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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는 매년 2억 명이 넘는 사람을 감염시키고 40만 명 이상의 사망을 초래하는 무서운 감염병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지만, 말라리아 원충은 물론 이를 옮기는 모기까지 치료제와 살충제에 내성을 키워 계속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말라리아를 억제하기 위해 모기와 공존하는 색다른 방법을 연구 중이다.
국제 곤충 생리학 및 생태학 센터 (ICIPE)의 제레미 헤렌과 그 동료들은 케냐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채집한 아노펠레스 (Anopheles) 모기에서 흥미로운 기생충을 발견했다.
사람과 다른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는 아노펠레스 모기라고 해서 기생충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기 역시 다양한 기생충에 시달리는 데, 이 중 하나가 미포자충류(Microsporidia)인 미크로스포리디아 MB (Microsporidia MB)다.
미크로스포리디아 MB는 모기 입장에서 보면 영양분만 조금 가로채는 착한 기생충이다. 기생충 역시 숙주 없이는 살 수 없다.
따라서 숙주 안에서 오랜 세월 진화해 적응한 기생충이나 병원균은 숙주에 비교적 크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경우들이 많은데, 미크로스포리디아 MB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연구팀은 이 기생충과 모기를 중간 숙주 삼아 인간을 노리는 말라리아 원충과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미크로스포리디아 MB에 감염된 모기에는 말라리아 열대열 원충 (Plasmodium falciparum)이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정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기 위해 실험실 환경에서 미크로스포리디아 MB에 감염된 모기에 열대열 원충을 감염시켰으나 말라리아 원충이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숙주의 몸에 본래 있던 기생충이 새로운 기생충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미크로스포리디아 MB는 수집된 모기의 10%에 발견될 만큼 흔하지만, 모기의 장과 생식기에서 숙주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다.
주된 감염 경로는 생식기를 통해 모체에서 새끼로 수직 감염되는 것으로 다른 곤충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없다. 따라서 살충제처럼 모기가 내성을 획득하거나 생태계를 교란할 위험이 없다.
물론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 건 변하지 않지만, 말라리아만 옮기지 않아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연구팀은 이 기생충을 모기에 많이 감염시킬 수 있다면 말라리아 억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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