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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패왕별희’의 연좌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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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패왕별희’의 연좌제 금지초한지((楚漢志)는 한고조 유방과 초나라 패왕 항우의 기나긴 다툼을 그리고 있는 중국 역사소설입니다. 한고조 유방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으로는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함)의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웁니다.

패왕별희(覇王別姬)는 한고조 유방에게 패한 초패왕 항우와 그의 애첩 우희의 비극적 이별을 그린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입니다. 경극(京劇)은 베이징(北京)에서 발전하였다 붙여진 이름으로, 전통적으로 남자들만 연기하여 여자 역할도 보통 남자가 합니다. 영화 ‘패왕별희’(감독 천카이거)는 어렸을 때부터 경극을 함께 해온 시투(장풍의 분)와 두지(장국영 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둘은 자신들의 배역인 항우, 우희와 비슷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두지와 시투는 경극학교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유명한 경극배우가 됩니다. 두지와 시투는 경극학교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다른 수련생들의 잘못이 있으면 연좌제로 모두 얼차려를 받습니다. 연대책임으로 몰고 가는 연좌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타당할까요?

연좌제란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고대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죄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까지 형사책임을 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근대 형법이 시행되기 전인 조선후기까지 연좌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반역죄의 경우, 반역죄를 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반역죄를 범한 사람의 친족, 외척 등의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반역죄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처벌받았습니다. 친족뿐만 아니라 친구, 같은 학파, 같은 고향이라는 이유로도 처벌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연좌제가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때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때부터 연좌제가 완전하게 폐지되지는 않았습니다. 범죄자와 일정한 신분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형사책임 이외에 불이익한 처우를 당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상범의 가족이나 친족임이 신원조회에서 밝혀지면 고위공무원으로 임명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해외여행이나 출장 등에서도 제한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헌법은 제13조 제3항에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연좌제는 근대형법의 자기책임의 원칙, 형사책임 개별화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연좌제 금지는 친족의 행위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위가 본인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형사법상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어떠한 불이익한 처분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극학교의 선생님들이 수련생을 체벌하는 것은 교육의 목적이 있다고 하더러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같은 수련생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수련생들까지 연대 책임을 물어서 얼차려나 구타를 하는 것도 위법한 것으로서 헌법상 원칙인 연좌제 금지에 위배됩니다.

요즘, 유명인사라는 이유로 자신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가족의 잘못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전혀 관여한 바 없는 유명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파이낸셜뉴스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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