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됐던 스포츠 무관중으로 서서히 기지개
소비자 스트레스 분출구…최상의 대안으로
‘2차 물결’ 우려에 일부선 “성급하다” 목소리
美 MLB 게임당 64만불 증발 천문학적 손실
선수 연봉하락·방송사만 중계권료 이득 챙겨
“팬 응원 없는 선수, 경기력 떨어질 것”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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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혼(鬪魂)과 투혼이 충돌하는 지점엔 함성이 필수다. 어떤 운동 경기든 관객의 이런 열정으로 존재한다. 산업으로서 스포츠가 번성해 온 동력이다. 소비자로서도 운동경기만한 스트레스 분출구가 없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걸 집어삼켜서다. ‘설마’가 ‘역시’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중국에서 출발, 유럽과 북미에 상륙한 코로나19가 욕구 해소의 구멍을 빈틈없이 틀어 막았다. 미 프로농구 NBA가 지난 3월 중순 시즌 중단을 발표하자, 전 세계에선 “이게 정말 현실이냐”는 장탄식이 쏟아졌다. 관중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다른 스포츠에 미칠 파장도 직감한 반응이었다. 북미·유럽·아시아…. 각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스포츠가 모두 급정거했다. 그렇게 두 달 넘게 흘렀다.
한국·대만·독일이 스포츠 경기 재개의 기지개를 켰다. 공통점은 코로나19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국가라는 거다. 하지만 ‘반쪽’이었다. ‘무관중 경기’를 해법으로 도출했다. ‘생존’과 ‘생계’,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타협이었다.
함성이 음소거된 스타디움은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무관중 경기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얽히고설킨 국가끼리 맞붙거나 유난스러운 관중이 폭력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큰 매치에 도입했던 처방전이었다. 찜찜했지만 거부 불가였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나았기 때문이다.
시선은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경기를 재개한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 온통 쏠렸다. 이보다 앞서 한국과 대만에서 축구·야구가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국제 스포츠계에선 독일이 더 큰 판이다.
지난 3월초 경기가 중단된 이후 세계 톱 축구리그 가운데 처음으로 선수들이 피치에서 치고 달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여섯 경기가 연달아 열렸다. 관심이 집중된 경기는 보루시아도르트문트와 샬케04의 라이벌전이었다. 도르트문트는 이른바 ‘노란벽(Yellow Wall)’으로 명성이 자자한 열성팬을 보유한 구단이다. 고유의 유니폼색인 노란색에 맞춰 2만5000명의 팬들이 노란물결을 연출해왔다. 예전 같았으면 꽉 들어찼을 관중석은 텅 비었다. 교체명단에 오른 선수는 마스크를 썼다. 기자회견도 화상으로 진행했다. 리그를 이어 가려는 고육책이었다. 코로나19 억제를 위한 엄격한 보건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스타디움엔 선수·스태프·구단 관계자·방송 인력·보안 인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분데스리가 소속 구단인 프라이부르크의 크리스티안 스트라이히 감독은 “관중도 골이나 감독처럼 축구의 일부인데 팬들이 없어 슬프다”고 말했다. 도르트문트의 미드필더 율리안 브란트는 “결국엔 우리 모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축구협회 크리스찬 세이퍼트 최고경영자(CEO)는 “관중없는 스타디움은 이상적인 솔루션은 아니지만, 위기의 시기에 몇몇 클럽은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리그를 보존하기 위한 유일한 옵션”이라고 설명했다. 선수와 감독, 행정가의 이런 토로는 코로나19에 발목을 잡힌 스포츠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독한 바이러스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포츠는 어떤 미래로 가고 있는 걸까.
▶정치적 결정…선택지 없는 선택=결국 결정은 정치의 몫이다. 생존이 걸렸을 땐 사회 구성원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스포츠가 다시 돌아온 걸 보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당시 TV를 통해 지난 3월 이후 처음 PGA 골프경기가 전파를 탄 데 대한 반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포츠는 이 나라의 정신”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달 11일 찰스 슈왑 챌린지를 시작으로 투어가 재개되는 걸 반기면서다. 그는 무관중 경기로 시동을 거는 것과 관련, “정말 정상으로 다시 돌아오길 원한다”며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골프 토너먼트를 구경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건(마스크 착용) 정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활동 재개에 유독 매달리는 인물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아직 코로나19 ‘2차 물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성급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만큼 앞서 나가진 않지만 미국 공화당에선 무관중 경기로라도 프로 스포츠 경기를 진행토록 주(州)를 열겠다고 밝힌 주지사들이 적지 않다.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에 뒤질세라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뒤를 이었다. 그는 프로레슬링(WWE)과 이종격투기(UFC)를 ‘필수 서비스’라고 선언하며 관중없이 경기를 치르도록 허가했다. 아울러 메이저리그축구(MLS)와 메이저리그야구(MLB), NBA도 자신이 관할하는 주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경제보단 시민의 건강을 우선시해왔던 앤드류 쿠오모 미국 뉴욕주 주지사도 지난 18일 프로 스포츠팀에 관중의 입장없는 시즌 개막을 요청했다. 무관중 스포츠가 현재로선 최적의 대안이라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뉴욕주는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미국 안에서도 최대 타격지로 꼽히는 곳이어서 무게감이 달랐다. 그는 “하키, 농구, 야구, 풋볼 등 누구든 재개 준비가 돼 있으면, 우리는 도울 수 있는 파트너”라며 “이건 뉴욕 주민들에게, 또 뉴욕주에도 최선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각 프로 스포츠는 협회 차원에서 경기 재개 일자를 논의 중이다. 농구, 하키, 축구, 풋볼 등이 오는 8월 중순이나 하순은 돼야 경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앉아서 망할 순 없다지만…=속이 까맣게 타는 건 스포츠 업계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여행 업계만큼은 아니지만, 모든 활동이 ‘올스톱’ 된 영향을 손해액으로 따지면 천문학적이다. 스포츠 산업을 지탱하는 3대축은 관중(입장료 수입)·방송중계권료·후원사 수입이다. 무관중 경기는 상업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 관중없이 경기를 진행했을 때 경제적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단초를 미 MLB가 최근 제공했다. 82경기로 진행되는 시즌을 무관중으로 치르면 게임당 평균 64만달러를 잃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선수들에게 줘야 할 연봉을 다 준다고 가정한 수치다. MLB 측이 ‘팬없는 경기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을 단 문서에서다. 코로나19로 프로야구 산업은 100억달러(약 12조2900억원)의 손해를 보는 걸로 추산했다. 관중이 없을 때 뉴욕양키스만의 상각전영업이익(EBITA·세금 등을 제외하기 전 영업이익)은 -3억1200만달러(약 3834억원)에 달한다.
프로축구도 타격이 적지 않다. 회계컨설팅사 딜로이트에 따르면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입장료 수입은 리그 전체 매출의 14%다. 2017~2018년 시즌을 기준으로 한 거다. 무관중이 돼도 버틸 순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에 있는 소규모 구단은 같은 시기 전체 매출의 45%를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무관중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중계권료 수입도 불확실하다. 경기가 언제, 어떤 식으로 재개될지 유동적이어서 주요 방송사들이 돈을 내기 꺼려한다. 프리미어리그는 경기가 재개되지 않는다면 이 부문에서 9억1000만달러를 날릴 수 있다. 컨설팅 업체 KPMG는 유럽의 5대 축구리그가 빨리 재개할 수 없다면 43억7819여만달러를 손해볼 수 있을 걸로 전망했다. 2017~2018년 시즌 매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후원사로부터 얻는 수입은 통상 다년 계약을 맺기 때문에 사정이 낫지만, 올해 1분기 새로 계약이 성사된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한 걸로 파악된다.
스포츠 산업은 울상인데 방송사엔 나쁠 게 없다. 경기장 대신 TV앞에 모여드는 사람들 덕분에 시청률이 올라서다. 분데스리가의 지난 16일 경기는 독일 유료TV방송인 스카이(Sky)를 통해 369만명의 시청자가 봤다. 통상 시청자수의 2배를 넘는 것이다.
▶서두른 재개, 선수들에겐 어떤 영향=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돈을 떠나 무관중으로라도 스포츠를 서둘러 재개했을 땐 어떻게 될지 짚었다. 결론은 선수들에게 좋을 게 없다로 수렴했다. 2011년 미 NFL에 있었던 사례를 거론했다. 당시 선수들과 구단간 돈 문제로 리그가 18주 동안 중단됐다. 선수들에게 훈련할 날을 충분히 주지 않고 경기를 재개했다. 이전 시즌보다 선수 부상률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봐도 홈구장에서 팬들의 응원을 받을 때와 적진에서 게임을 치를 때 확연히 갈리는데, 무관중 상태에선 최대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가 언제 재개될지 속단할 수 없는 정황도 속속 나온다. 당장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왓퍼드에선 선수와 구단 관계자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가 오는 26일 회상회의를 열어 접촉훈련을 위한 규약에 대해 논의하고 다음달 12일 리그를 다시 시작할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 와중에 전해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일각에선 이 재개 일자를 맞출 수 없을 걸로 본다. 유럽에선 2차 물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다. 미국도 봉쇄조처 해제 이후 일부 주에선 확진자 수가 증가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스포츠도, 사람도 안갯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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