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국립묘지가 체험장으로...새로운 보훈의 가치 만들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형시영 보훈교육연구원 연구부장]
2020년 올 해는 청산리·봉오동 전투 100주년이고, 6·25전쟁 70주년이자 4·19혁명 6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보훈의 역사는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가치와 이를 통해 시민적, 평화적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가치와 의미를 짚어보고자 <프레시안>은 보훈교육연구원과 함께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보훈의 역사, 사회적 의의, 평화지향성 등을 사회적으로 함께 생각해 보고 방향을 정립해 보는 기회의 장을 갖고자 합니다. 편집자.

“FREEDOM IS NOT FREE”. 이 말의 의미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대가가 없는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단어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그리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어떠한 대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

자유는 한 인간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 외부의 간섭이나 구속을 당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목숨을 위협받으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국가적 위기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일제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과 재산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 북한의 침략과 도발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호국용사들, 권위주의 독재체제 아래에서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민주인사들, 우리는 이분들을 국가유공자라 부른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한 행위는 아니지만, 공동체의 존립, 유지, 발전을 위한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은 인정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하며, 기억되어야 한다. 국가의 강제나 의무부여를 통한 희생에 대해서는 국가책임 차원에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의 강제나 의무부여는 없었지만, 공동체의 공익에 이바지했다면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국가가 상응한 보상과 예우를 시행하는 것은 모든 국가공동체의 보편적 가치관이다.

국가보훈은 조국독립, 국가수호, 민주발전 등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특별히 희생하거나 공헌하신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보답하는 국가적 행위이다. 이러한 보답의 행위는 국가유공자가 명예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보상하고, 그분들의 희생정신이 기억되고 계승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예우를 다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로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한 데 대한 빚진 마음이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과 6․25전쟁 등을 통해 겪었던 수많은 비극과 고통의 상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지나간 역사적 과거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국가보훈의 근간인 상징적 실체로서 국가유공자는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보훈대상자는 1960년대 15만 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계층이 보훈 영역에 편입되어 2019년 7월 845천 명으로 정점을 이루었으나 그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일제로부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분들은 이제 몇 분 남아 계시지 않는 상황이다. 6․25참전유공자들은 평균 연령이 89세의 고령으로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국가보훈의 상징적 실체는 사라지고 그 정신만이 남을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제도의 마지막은 사망 시 예우이다. 국가유공자가 돌아가시면 국가보훈처는 보훈처장 명의의 근조기와 태극기를 전달했다. 그러나 2018년 6월부터는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와 태극기로 격상하고 보훈단체를 통해 관 위에 태극기를 덮어드리는 조문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마지막까지 최선의 예우를 다하는 모습으로 유가족은 보훈가족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고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또한, 국민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진다. 희생과 공헌에 대한 국가적 보답의 확고한 믿음은 국가에 대한 깊은 신뢰로 이어지고, 이는 국가공동체의 영속적 발전 원동력이 된다.

국가보훈은 국가유공자가 생애 마지막까지 명예롭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상과 예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사회적 가치로 공유되고 역사적 기억의 상징으로 널리 확산하여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공동체 내에서 인정받고, 기억되며, 존중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보훈문화는 독립정신, 국가수호, 민주의식의 정신적 가치를 바탕으로 희생과 헌신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고 예우받는 자연스러운 정신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토양을 조성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보훈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상징정책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은 국립묘지가 엄숙하고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국민들이 학습하고 기억을 되새기며 공유하는 실질적인 체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호주는 전쟁기념관과 국회의사당이 마주 보고 있어 늘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린다. 프랑스는 개선문 밑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무명용사비를 설치하여 전몰용사를 추모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의 가치를 보존하고 기억하며 학습하기 위해 보훈을 문화적 가치로 접근하고 있다.

국가보훈기본법을 비롯한 보훈 관련 법률에서는 보훈문화의 확산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훈문화는 일방적으로 강요나 강제적 주입이 아니라 국민들의 합의와 동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주변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보훈 관련 인물․사건․장소 등 우리가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다양한 소재들이 많이 있다. 지방화시대에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보훈관련 인물·사건·장소 등을 기념·기억하거나 재현함으로써 국민통합의 기제로서 독립·호국·민주의 정신적 가치가 작동하는 보훈문화 확산의 사회적 토양이 조성되어야 한다.

[형시영 보훈교육연구원 연구부장]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