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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부채납 공원 땅에 복합청사 짓고…민간개발 막으면서 공원용지 지정? 서울시 내 맘대로 공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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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로 공원 노숙인 관리 곤란”

뚜렷한 사용계획 없이 빌딩 추진

송현동 호텔부지엔 문화공원 조성

충분한 논의 없이 조성 밀어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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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복합청사 건설을 결정한 남대문로5가 공원용지.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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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동쪽의 송현동에는 23년째 놀려 두는 너른 땅(3만7000여㎡)이 있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에 2900억원을 주고 이 땅을 샀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금난에 빠진 대한항공은 이 땅을 팔려고 내놨다. 하지만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이 땅의 공원화 계획을 밝히면서 대한항공이 제값을 받고 땅을 팔기가 어려워졌다.

#서울역 쪽에서 퇴계로를 따라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옆에는 작은 공원용지(1576㎡)가 있다. 바로 옆에는 지상 28층짜리 건물(SG타워)이 공사를 거의 마치고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공원용지에 600억원을 들여 지상 11층짜리 공공복합시설을 짓기로 하고 지난 4월 서울시의회의 동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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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용으로 바꾸려고 하는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연합뉴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민간 기업이 개발을 위해 사들인 땅은 공원화를 추진하고, 당초 공원으로 계획했던 땅에는 건물을 짓기로 해서다. “서울시의 도시계획 입안 과정을 보면 무리수가 많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결정하는 방안에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가 적극 찬성 의견을 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이달 중 주민 열람공고를 내고 올해 안에 문화공원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선 “(서울시의) 접근 방법부터 잘못됐다. 제대로 고증도 받지 않은 상황”이란 지적이 나온다. 해당 부지는 조선 초기에 소나무밭이었다가 조선 중·후기에는 양반과 왕족들의 집터로 쓰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사택 부지, 광복 후에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숙소 부지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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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송현동 땅 매각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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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원법에 따르면 문화공원은 설치기준이나 규모 같은 제약이 없는 곳이다. 서울시 내부에선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없다. 민간에서 다른 용도로 못 쓰게 하고 공공 용도로 하겠다는 정책적 표명”이란 말이 나온다. 여기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현동 부지에선 건물 높이가 12m 이하로 제한된다. 4층 정도 건물은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초 대한항공은 이곳에 호텔을 지으려고 했지만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 안쪽에 있다는 이유로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뜻대로 공원용지로 지정되면 사실상 개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땅값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업자가 이 땅을 사더라도 다른 용도로 개발할 수 없어서다. 결국 원래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서울시가 사들이거나, 대한항공이 땅을 팔지 않고 버티며 서울시장이 바뀌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남대문로5가 공원용지는 송현동과 정반대 상황이다. 민간에선 공원을 요구하지만 서울시는 공공청사 건설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6월에 착공하는 게 목표다. 서울시는 노인회관과 정신건강센터 등 지역 맞춤형 복지 수요에 쓰겠다고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건립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는 시의회 검토 과정에서 공원으로 조성하면 노숙인들이 상주할 가능성 등으로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과 SG타워의 사업 시행사는 원래 계획인 공원을 유지해 달라며 서울시 방침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일부에선 “건물 앞에 공원이 조성되는 줄 알았다가 11층짜리 건물이 들어서게 된 꼴”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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