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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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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이 비난한 날, 청와대 “대북 삐라 참 백해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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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나는 못된 짓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는 놈이 더 밉더라”

청와대 “삐라, 안보에 위해 행위”

김, 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위협

대남 비방에 대응 않던 통일부

이번엔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추진

학계 “표현의 자유 막아 위헌 소지”

중앙일보

김여정


북한이 4일 대북 전단 살포에 강력 반발하자 정부가 대북 전단 차단의 법제화 검토 방침을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대북 삐라(전단)는 참으로 백해무익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안보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에는 앞으로 정부가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여정(사진) 제1부부장이 이날 새벽 담화를 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나온 언급이다. 이 관계자는 김 제1부부장 담화에 대해선 “따로 논평하지 않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전단 살포를 막는 차원에서 “무리 없이 균형있게 조항이 담기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전망이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오전 6시쯤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대북 단체들이 최근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당선 소식 등을 담은 전단을 풍선에 달아 북한으로 날려보낸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김 제1부부장은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4시간여 만에 반응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10시40분쯤 예정에 없던 대변인 브리핑을 했다.

김여정 “삐라 막을 법 만들라” 4시간 만에 통일부 “법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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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새벽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에서 ‘새 전략핵무기 쏘겠다는 김정은’이란 제목의 대북 전단과 소책자 등을 살포하고 있다. [사진 자유북한운동연합]


통일부가 그간 북한 선전매체의 대남 비방을 놓곤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반응해 왔던 것과는 다르다. 여상기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경지역에서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며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단일 법률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포함하는 법리적·법체계적으로 무리 없이 균형있게 조항이 담길 수 있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제1부부장이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자 정부는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알린 셈이다.

정부의 이 같은 기민한 대응은 ‘전단 살포 중단’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남북 정상 간 합의인 데다 북한이 과거 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군사도발에 나섰던 전례가 반복될 가능성까지 우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2014년 10월 탈북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대북 풍선을 날리자 북한이 고사총을 쏴 군이 대응사격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당시 정부가 접경지역 주민 보호 차원에서 경찰을 동원해 전단 재살포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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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4일 자 2면에 실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문. [뉴스1]


하지만 이른바 삐라 금지법은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번지며 북한 요구에 남한이 응해 남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든다는 반발을 부를 수 있어서다. 통일부는 앞서 2016년 대법원이 “대북 전단 살포로 국민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일 경우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며 전달 살포 제지를 적법하다고 봤던 판례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침해 의견은 여전하다. 정준현 단국대 법대 교수는 “방송을 사전검열하지 않듯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며 “견해를 표현하는 수단인 전단 자체를 법으로 금지할 경우 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배치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정부 입법으로 나설 경우 국회에서도 충돌이 예상된다. 최형두 미래통합당 원내대변인은 통일부의 법제화 검토를 놓고 “정부가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이 177석 의석수를 기반으로 법제화를 밀어붙일 경우 야당으로선 별다른 방법은 없다.

북한의 이날 압박은 남북 합의의 불균형 이행 논란도 부를 전망이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군사합의서(9·19 군사합의)’ 위반으로 지적했다. 실제로 9·19 군사합의엔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약속이 담겼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11월 창린도 해안포 사격과 지난달 북한군의 남측 감시초소(GP) 총격으로 9·19 합의를 위반했지만 이에 대해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단 살포를 놓곤 정부를 향해 책임을 물은 모양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오후 열린 정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대북 전단 문제가 논의됐는지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정용수·윤성민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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