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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방위비 불만 트럼프, 메르켈에 통보없이 "미군 9500명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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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GDP 2%' 약속 어긴 독일에 첫 보복

유럽평화, 러시아 팽창 억지 전후질서 흔들

"한·일에도 안보보다 방위비 거래 우선 경고,

국방장관이 의회 인증땐 주한미군 감축 가능"

중앙일보

2017년 3월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이 묘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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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일주둔 미군을 9월까지 현재 3만45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9500명(27.5%) 감축하라는 명령에 서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방위비 증액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 대한 첫 미군 감축 사례여서 향후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 큰 파장을 부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독일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2% 지출 약속에 못 미치는 1.38%를 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독미군 감축 명령은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5일(현지시간)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을 인용해 보도했다. "각서 형식의 이 명령은 주독미군을 9500명 감축하는 동시에 어떤 시점에도 상주병력 규모가 2만5000명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도록 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포함한 독일 정부에는 미군 감축에 대한 사전 경고는 물론 이날까지 공식 통보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의 20분간 통화에선 주요 7개국(G7)과 나토,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미군 감축 얘기는 없었다. 다만 메르켈 총리가 당초 6월로 예정됐던 G7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문에 불참하겠다고 한 뒤 분위기가 험악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감축 결정은 독일의 G7 불참과는 관련이 없으며 해외 파병 미군의 규모를 제한하고,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규모를 확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월스트리저널은 미 관리들을 인용해 "이번 조치는 지난해 9월부터 논의해왔던 것"이라며 "특히 독일의 방위비 지출 수준과 독일이 발틱해를 통해 러시아와 직접 가스관을 연결하는 노드 스트림2 사업을 고집하는 데 대한 오랜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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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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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기자회견에서 방위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독일을 콕 집어 "주독미군 2000명을 폴란드나 다른 나토 회원국으로 옮길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 독일에서 감축하는 9500명 중 1000명 이상은 주둔비용을 100% 부담하겠다는 폴란드에 재배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올해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도 해외 미군 감축의 도미노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재무장을 억제해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팽창을 막았던 전후 질서 자체를 뒤흔드는 결정이란 지적도 나온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트위터에 "미국의 독일 주둔은 영원한 전쟁이 아니라 영원한 평화를 위한 투자"라며 "미군 감축은 러시아의 추가 침략을 유혹하고,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동맹국들의 의구심만 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임스 타운젠드 전 국방부 나토·유럽담당 부차관보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다른 동맹들이 '다음은 내 차례냐'고 물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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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와 제임스 드하트 미국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가 2019년 12월 서울 동대문구 국방연구원에서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5차 회의를 하고 있다. [외교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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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의 경우 국방비 지출이 GDP의 2.6%에 달하며,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따르면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현 수준인 2만 85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안전장치가 있다는 차이점은 있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백악관과 국방부·국무부뿐 아니라 미 의회도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 억지를 최우선하는 상황에서 독일처럼 미군 감축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동맹국에도 자신은 안보 전략보다 방위비 거래를 우선하겠다고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SMA 협상에서 원하는 만큼 수억 달러 증액을 얻지 못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을 결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방수권법 상 주한미군을 일방적으로 감축할 수 없지 않느냐는 데에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의회에 일정 규모 감축은 미국과 동맹국 안보에 중대한 훼손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인증하거나, 현재 1개 여단 순환배치를 연기하는 식으로 감축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라고 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이민정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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