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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美 이견 뚫고 개소된 남북 연락사무소…北폭파로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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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보수 비용만 97억…美반발에 개소 후 한미 워킹그룹 출범

北, 9일부터 통신선 모두 차단하며 폐쇄수순

청와대, 긴급NSC회의 개최·美 ‘실망표명’ 입장 준비할 듯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결국 폭파시켰다. 개·보수 비용만 우리 세금 약 97억 원이 투입됐고, 개소 이후 한미간 마찰을 줄이기 위해 한미 워킹그룹이 출범했다.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미국의 반대를 뚫고 개소된 남북 소통채널은 그렇게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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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6일 오후 2시49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연기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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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통일부는 북한이 이날 오후 2시 49분경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밝혔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9월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설치된 외교채널이었다. 당시 미국이 연락사무소에 우리 정부가 공급할 전기와 원자재 등을 두고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제기해 개소까지 예상보다 많은 시간 소요됐다.

이날 청와대는 오후 5시 국가 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소집했다. 청와대는 이날 늦게라도 북한 조치에 대한 입장표명을 할 전망이다. 미국 소식통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18일 오전 북한이 남북간 대화채널을 일방적으로 폭파한 것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표현수위는 작을 것으로 보인다. 한 미국 소식통은 "남북관계 사안이기 때문에 크게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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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16일 북한이 이날 오후 2시49분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연락사무소 전경. [헤럴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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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미국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정상회담 및 선언 이후 합의정신에 따라 공동연락사무소 설치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국무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reaffirm)한 이유는 남북관계 발전은 반드시(must happen) 비핵화 발전과 발을 맞춰야(lockstep) 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 작업 및 관련 절차가 더딘 와중에 남북교류 속도를 높여서는 안된다는 비판 메시지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단 ‘대화’가 전제돼야 비핵화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며 미국을 설득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큰 물줄기가 형성돼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연락사무소가 대북제재 위반인지 여부는 큰 물결에 걸림돌이 되거나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협소한 문제다”고 논평했다.

이에 미국 재무부 측에서 연락사무소 운영에 동원될 전력을 문제삼았다. 당초 한국에 주재하지 않았던 미 재무부 직원이 한국으로 파견오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17년 12월 추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는 발전기(HS코드 8501)도 제재품목으로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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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5일 오후 2시 49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사진은 2018년 9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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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떻게 미국이라는 장벽을 뚫고 연락사무소를 개소할 수 있었을까. 당시 워싱턴의 대표적 외교정보지 ‘넬슨리포트’는 남북 연락사무소를 단순 소통채널이 아닌 ‘경협채널’로 해석했다. 이 때문에 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과 유사한 채널로 인식하는 시각이 워싱턴에 팽배했다. 외교부는 이러한 오해를 푸는 데에 동분서주했다. 당시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수시로 찾아 통일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도훈 본부장은 스티븐 비건 당시 새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수시로 소통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그 결과, 미국은 ‘크게 반대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남북 공동연락소 개소과정을 ‘지켜봤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헤럴드경제에 “백악관 등 주요 관계자들은 연락사무소 개소를 지원하는 입장”이라면서도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동원될 전력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 소동 이후 한미 당국은 지난 2018년 11월 통일부 당국자와 재무부 당국자 등도 참여하는 한미 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향후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미간 마찰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대안이었다.

미국의 대북제재 프레임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뚫고, 정부는 북한과의 연락사무소를 개소했다. 북한은 그러나 이날 남측이 2018년 남북 판문점·평양 합의를 파기했다며 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설치 1년 9개월 만의 일이다. 이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대에 요새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9일부터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차단해 폐쇄수순에 들어갔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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