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왼쪽)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을 마친 후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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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22일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 크게 반발했다. 사실관계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상 간 외교문제를 함부로 발설하는 것이 양국 신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특히 볼턴 전 보좌관의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을 향해 “적절한 조치”도 요구했다. 현직을 떠난 개인의 회고록에 청와대가 강력 대응하는 건 이례적이다.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경우 회고록 내용이 사실로 굳어지고, 국내 여론과 한반도 정세에도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볼턴 전 보좌관이 낸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에 대한 정의용 실장의 입장을 대신 밝혔다. “한국, 미국,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다. 회고록은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이어 윤 수석은 청와대 입장도 추가로 전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 간의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다.”
남북미 협상 과정에서 관여도가 크기는 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전직 당국자 개인의 글에 청와대가 공식 반발한 건 이례적이란 평가다. 내부적으로도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 청와대가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없지는 않았다. 18일 회고록 내용이 처음 공개된 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강력히 비판하는 쪽을 택한 건 그대로 방치할 경우 부작용이 상당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단 볼턴 전 보좌관 글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이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폄훼 또는 비하하고 있어,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볼턴 전 보좌관은 북미 비핵화 외교를 “한국의 창조물”로 묘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진찍기용”으로 판문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만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사실로 굳어질 경우 문재인 정부 대외전략의 정당성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에 대해 “조현병 같은 생각(schizophrenic idea)”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볼턴 전 보좌관에게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본인이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발끈한 대목에선 북한에 대한 '슈퍼매파’ 볼턴 전 보좌관에 대한 분노도 읽힌다.
정 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이러한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동맹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윤 수석은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는 정 실장 발언과 함께 “이 내용은 21일 저녁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전달됐다”고 소개했다.
정 실장이 미국에 당부한 ‘적절한 조치’는 불분명하다. 다만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통상 대통령 참모들은 비밀준수의무를 지닌다. (…)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미국 쪽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언급한 것을 감안할 때 사법 측면 대응을 촉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내법적으로 회고록에 대응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미국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인 만큼 양국의 신뢰에 금이 가는 상황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력하게 당부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의 당부를 수용하느냐와 별개로, 미국에 엄중히 항의하는 모습을 국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위라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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