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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명창 녹음 안 빌렸다, 진짜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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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꾼’ 학규역 이봉근

현장 녹음으로 로드 무비 몰입감

“잔인한 심청가, 이제 깊이 알 듯”

중앙일보

7월 1일 개봉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 주인공 학규역으로 스크린 데뷔한 배우 이봉근. 전북 남원 출신으로 국악을 전공, 관련 공연만 1500회 넘게 한 실제 소리꾼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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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은 주인공 학규역의 실제 소리꾼 이봉근(37) 없이는 가늠이 안 된다. 임권택 감독의 기념비적 작품 ‘서편제’(1993)와 ‘춘향뎐’(2000)을 비롯해 판소리 영화는 여럿 나왔지만, 이 작품들은 출연 배우가 아닌 당대 명창의 녹음을 일부 활용했다.

반면 ‘소리꾼’은 오롯이 이봉근이 촬영현장에서 낸 소리가 뼈대이고 중심이다. 극 중 학규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동안 시력을 잃은 딸 청이에게 일종의 ‘힐링 노래’로 심청가를 들려준다는 게 골격이라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전통의 판소리가 어떻게 탄생했나, 그 시원(始原)을 들려주는 우화 같은 영화다.


“사실 심청가나 춘향가나 액면 그대로는 잔인하고 어이없는 얘기다. 젊은 소리꾼들끼리 비판적으로 토론하면서 어르신들께 여쭤본 적도 있다. 이번 영화를 통해 한층 그 깊이를 느낀 듯하다.”

26년간 1500회 이상 국악 공연을 한 만능소리꾼 이봉근을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358만 명을 동원한 영화 ‘귀향’(2016)의 조정래 감독이 대학시절 시놉시스를 쓰고 28년을 벼르다가 완성한 이 영화는 ‘판소리에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보인다. 초가집·은하수·이불빨래 같은 전형적인 ‘전래동화’ 풍의 화면에다 18세기 조선 민초들의 엄혹한 현실을 누비고 심청가·춘향가를 합친 듯한 해피엔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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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은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사진) 딸 청이(김하연)를 위해 심청가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로드 무비다(아래 사진). [사진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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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규 부녀를 따라 ‘로드 무비’를 함께 하는 대봉역의 박철민도 실제 북을 배워 직접 치는 등 일부 장면을 제외하곤 모두 현장 녹음했다고 한다. 특히 “(구경하는) 이들 모두를 울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벼슬아치의 포악한 명을 받들어 학규가 ‘심 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부르는 장면에선 이봉근의 절창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한국형 뮤지컬 영화’라는 수식어로 부족한, 진한 전통의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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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은 학규(이봉근)가 인신매매된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위 사진) 딸 청이(김하연)를 위해 심청가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로드 무비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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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만 4개월 준비했다. 무력하게 아내를 잃고 눈먼 딸과 함께 1년간 전국을 떠돌며 쌓인 죄의식이 소리로 흘러나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모두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득음하듯 뿜어져 나오는…. 리허설 한번 하고 바로 촬영한 게 그대로 영화에 담겼다.”

“생계를 아내에게 의존해온 못난 애비이지만 소리할 때만큼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학규가 딸을 위해 만든 ‘심청가’는 이렇게 탄생한다.

연극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스크린 연기는 처음. “판소리가 여러 사람에 그때그때 감정 이입하는 데 비해, 한 인물에 푹 빠져서 그 사람이 된 듯 연기하는 데 새로운 매력을 느꼈다. 단역·조연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전북 남원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예가인 아버지가 취미로 즐기는 판소리를 통해 국악에 입문했다. “‘서편제’ 땐 송화(오정해) 동생인 동호의 아역 제안을 받았는데, 부모님이 내켜 하지 않아 오디션에 가진 않았다. 그러다 남원 국악예고 다닐 때 인근에서 ‘춘향뎐’을 찍는다기에 지원해, 화면에도 잠시 등장했다(웃음).”

영화를 찍으며 ‘서편제’가 낳은 스타 오정해의 조언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조정래 감독은 “서편제는 내 인생을 바꾼 영화이고 감히 비교조차 두렵다”면서도 “판소리의 뿌리를 통해 요즘 세계적 인기를 끄는 K팝의 원류, 우리 DNA에 녹아있는 흥과 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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