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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VIEW POINT] `까치`가 출판계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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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까치글방'이란 예스러운 이름의 출판사는 1977년 설립돼 43년째를 맞았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약 800종의 책을 낸 이 작은 출판사의 이름이 지난주 내내 출판인과 애서가들 입에 오르내렸다. 설립자인 박종만 전 사장이 6월 1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소식이 21일 밤 뒤늦게 알려지면서였다.

이날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전례 없는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후배 출판인과 작가, 독자들이 저마다 자신이 사랑한 까치의 책 이야기와 사진을 올렸다. 그럴 법도 했다. 까치가 수고스럽게 한국어로 옮겨 펴낸 인문과 과학 분야의 고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 같은 책이 없었다면 대학 교양 교육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페터 회, 페르난도 페소아, 알랭 드 보통 같은 한국이 사랑하는 소설가들을 발굴해 소개한 곳도 까치였다. 아르센 뤼팽의 20권짜리 전집을 국내 최초로 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까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고전이 한 트럭은 됐을 것이다.

생전에 고인을 만나뵙고 책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놀랄 때가 많았다. 70대의 노출판인은 그 누구보다 종이 신문의 서평을 열심히 탐독한 뒤, 출판 기자에게 이것저것 묻곤 하셨다. 지금까지도 아사히신문과 뉴욕타임스 서평을 매일 읽고서 출판할 책을 찾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 성실함이야말로 까치가 선택한 책이 특별한 이유였을 것이다.

고인은 떠난 이후에도 출판인들의 귀감이 됐으면 좋겠다. 숱한 성공한 출판인들이 사옥을 짓고, 인기 작가의 선인세에 베팅을 할 때 그분은 누구보다 밝은 눈으로 해외의 양서를 소개하는 데만 집중했던 출판인이었다. 덕분에 사옥과 많은 재산을 남기진 못했을 테지만 한 권도 버릴 책이 없는 800권의 유산을 남겼다.

부음 기사를 쓴 이튿날 고인의 딸인 박후인 대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앞으로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좋은 책, 까치다운 책을 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촌스럽다 놀림 받던 '까치다운 표지'를 여전히 기대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문화스포츠부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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