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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글로벌포커스] 역사의 물꼬를 바꾼 `8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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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5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시에서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인종차별적 과잉 진압으로 8분46초 동안 목이 눌려 살해됐다.

도로 바닥에서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외치다 죽어가는 과정이 동영상으로 퍼진 후 미국은 경찰과 사회에 구조적으로 뿌리내린 인종차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휩싸였다. 뉴욕, LA, 디트로이트 등 미국 상당수 대도시에서 일몰 후 통행금지를 실행했고, 일부에서는 도시 곳곳이 불에 타고 상점 등에 대한 약탈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며칠간 지속됐다.

이러한 사태에 화합과 치유, 평화적 해결 대신 시위 참여자를 과격 무정부주의자와 범죄자들로 싸잡고 인종차별을 방관하며 강하게 맞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가뜩이나 코로나19에 무능력 대책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짙어져가는 미국 사회에서 대립과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 사태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 대우와 불평등을 많은 미국인들이 다시 인지하게 됐다. 인종 분리 정책을 불법화한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 판결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0여 년 전 당선됐지만 이러한 차별의 결과는 사법, 경제, 교육, 직장 등 모든 사회 전반에 있고 문제 해결까지는 아직도 멀다는 것을 공감하게 됐다.

2017년 미국 법무부 조사에 의하면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흑인 범죄자에게는 20% 정도 높은 형량이 내려진다. 무단횡단 등 경범죄의 경우도 흑인이 처벌받을 확률이 백인보다 2배 이상 높다. 청소년의 경우 그 차이가 더 커서 흑인이 4배 정도 높은 확률로 성인으로 재판에 회부돼 높은 형량을 받는다.

작년 약 1억건의 교통 위반 사례 연구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의 차이를 잘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인 경우 흑인 운전자와 백인 운전자가 비슷한 비율로 검문되지만, 낮에는 흑인 운전자의 검문 비율이 훨씬 높다. 이렇듯 사법 전반에 걸쳐 불평등은 존재한다.

미국 백인 가정 소득의 중간값은 7만달러인 것에 비해 흑인 가정의 소득은 그의 60%인 4만1000달러다. 백인 가정의 8%가 빈곤층인 것에 비해 흑인 가정은 21%에 달한다. 전문직을 제외하면 같은 교육수준과 경력이 비슷하더라도 흑인 근로자의 실업률은 백인 근로자에 비해 평균적으로 2배 가까이 높다. 거의 모든 전문직과 관리직에서도 차이는 존재한다. 13%의 인구에 반해 대학교수의 약 6%만이 흑인이며, 특히 정년 보장을 받은 정교수의 경우는 더 적다. 포천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에 흑인은 단지 4명이다. 이러한 차별의 통계는 경제, 소득, 직업 등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

미국 사회에서 소득만큼 중요한 건강보험도 흑인 근로자가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소외돼 있다. 이는 코로나19 희생자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미국에서 흑인 인구 비율은 13%이지만, 코로나19 사망자의 25%는 흑인이다. 특히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곳들은 디트로이트, 휴스턴, 뉴욕 등에서도 흑인이 많이 사는 커뮤니티가 많다.

최근의 혼란 속에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70%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기업과 학교 등이 다양성과 평등을 위한 행동 등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게시물을 방치한 페이스북에서 회사들이 광고를 철회하자 페이스북 주가가 하루에 7% 급락해 60조원이 사라졌다. 지난주 있었던 애플의 WWDC에서 최고경영자 팀 쿡은 애플의 다양성과 평등을 위한 의지를 표명하고, 이를 위해 1200억원을 지원하고 흑인 개발자 육성과 지원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내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여 실제로 변화를 이뤄낼지는 미국 사회의 성숙도를 테스트하는 중요한 시험이다.

[안현수 미시간 경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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