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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32] 聖像 파괴령을 피해 살아남은 책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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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작자 미상, 츨루도프 시편, 9세기 중반, 양피지에 채색, 19.5×15㎝, 모스크바 국가역사박물관 소장.


세상에는 귀한 책이 많지만, ‘츨루도프 시편’은 특히 귀하다. 비잔틴 제국에서 815년에 공표되어 843년까지 근 30년 동안 지속한 2차 성상(聖像) 파괴령을 피해 살아남은 단 세 권의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경 중 시편을 담은 169페이지짜리 이 작은 책은 현 소장처인 박물관으로 이관되기 전 소장가였던, 19세기 러시아 상인 알렉세이 츨루도프의 이름을 따 ‘츨루도프 시편’이라고 부른다. 본문은 책을 양옆으로 펼쳤을 때 가운데로 몰리도록 한쪽에 치우쳐서 써두고, 주위의 넓은 여백에는 본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삽화가 들어 있다. 그중, 가장 의미심장한 장면은 바로 십자가형을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본문에는 “그들이 나에게 쓸개를 먹이고, 목이 마를 때 초(酢)를 마시게 했다”는 문장이 있고, 그에 맞춰 로마 병사가 장대에 식초 적신 스펀지를 꽂아 예수의 입에 들이대는 삽화가 나온다. 그런데 바로 그 아래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요한 7세가 등장한다. 성직자이면서 그 자신이 성상의 화가이기도 했던 요한 7세는 성상 파괴령을 준비하던 동로마 황제 레오 5세의 명을 받아 성상 파괴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일조했고, 그 덕에 대주교가 됐던 것. 그림 속에서 요한 7세는 예수의 입에 식초를 밀어 넣었던 로마 병사와 비슷한 모습으로 장대에 스펀지를 매달아 예수의 얼굴이 담긴 성화(聖畵)를 지우는 중이다. 사방으로 어지럽게 곤두선 그의 머리카락은 당대인들에게 우매함의 상징이었다. 요한 7세는 843년, 성상 파괴령이 폐지되면서 대주교의 권좌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성상 파괴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져 왔고, 그 대부분은 종교의 교리를 앞세운 세력 다툼이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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