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보수 우위’ 미국 대법원 “임신중지권 제한 안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임신중지 어렵게 한 루이지애나 법

“여성에 장애물” 5 대 4로 폐기

로버츠 대법원장 ‘결정적 한 표’

성소수자 보호 등 잇단 ‘진보 결정’

백악관 “유감스러운 판결” 비난


한겨레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제한하는 루이지애나주의 법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린 29일(현지시각), 낙태 반대 시위자들이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수 우위로 이뤄진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각)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놨다. 최근 성 소수자의 직장 내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도 제동을 건 데 이어 대법원이 잇따라 진보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주 안에 임신중단 클리닉 숫자와 임신중지 시술 의사 수에 제한을 두도록 한 루이지애나주의 임의료시설법이 헌법상 보장되는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를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이 법은 약 30마일(48㎞) 이내에 임신중단 클리닉을 한 곳씩만 두게 했다. 또 그 진료소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도 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인정 특권)을 가진 1명으로 제한했다. 루이지애나의 의사 2명과 클리닉 1곳은 “이 법 때문에 루이지애나주에서 매년 1만여명의 여성이 클리닉 한 곳의 의사 한 명에게 임신중단 시술을 받아야만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9명의 대법관이 논쟁한 끝에 5 대 4로 이 법 폐기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루이지애나 법은 임신중단 시술 제공자의 수와 지리적 분포를 급격히 감소시켜 많은 여성이 주 안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중단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 의견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이 법이 임신중단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장애물”이며, 헌법상의 임신중단권에 “지나친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임명된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 성향 대법관 4명의 의견에 ‘결정적 한 표’를 보태 다수 의견을 이끌어낸 점도 눈에 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만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고 본 게 아니라, 기존 대법원 판례를 존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에 대법원은 이번 루이지애나 법과 거의 똑같은 텍사스주의 법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로버츠 대법원장은 그 결정에 반대했었다. 하지만 당시 다수 의견으로 텍사스주 법을 무효화한 만큼, ‘선례 구속의 원칙’에 따라 루이지애나 법도 무효화해야 한다고 봤다는 것이다.

반면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등 4명의 대법관은 루이지애나 법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특권을 인정받은 의사만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의사들의 능숙함을 보장하는 것을 도와준다며 이 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근거 없는 임신중단 법리를 영구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백악관은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케일리 매커내니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대법원이 루이지애나의 정책을 파괴해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모두 평가절하했다”며 “선출직이 아닌 대법관들이 근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의 가치를 소중히 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 선호에 따라 낙태에 찬성해 주 정부의 자주적인 특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최근 두 차례 이어진 진보적 결정을 잇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민권법은 고용자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근거해 직원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결해, 연방정부의 직장 내 작업자 보호 조처가 전국의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직원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렸다. 이 때는 로버츠 대법원장과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대법관들도 찬성해 6 대 3 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또 18일에는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때도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낙태와 성 소수자 권리, 이민 문제는 미국 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