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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돈의 자유' 충만한 홍콩 옥죘다···"미·중 모두 KO승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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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미국이 무역흑자 누리는 수출시장, 지난해 흑자는 260억 달러

미중 어느 한쪽도 KO승은 불가능해, 최종 결과는 트럼프 예상과 다를 수도

금융허브 지위는 장기적으로 흔드릴 가능성, 단, 홍콩 금융의 중국화 시작돼

중앙일보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사진은 지난해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따로 만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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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경제 전쟁에서 KO승은 없다!”

미국의 지리경제학자인 장 폴-로드리그 호프스트라대 교수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경제역사를 보면, 수많은 정치 리더들이 경제 전쟁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그들이 희망했던 KO승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폴-로드리그 교수는 그 이유로 “경제란 말 자체에 들어 있는 상호 의존성”을 들었다. 국제 교역 등에서 어느 한 나라가 100% 베푸는 경우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홍콩의 경제 관계를 보면 미ᆞ중은 상당히 상호 의존적이다. 2019년 말 현재 미국 투자자가 홍콩에서 산 주식 규모는 850억 달러(약 105조원)를 웃돈다. 반대로 홍콩 투자자가 산 미국 주식은 35억 달러 정도다.



홍콩은 미국에 매력적인 수출시장



지난해 홍콩-미국 사이 상품교역 규모는 670억 달러(약 83조원)에 이른다. 미국이 본 무역 흑자는 260억 달러 정도다. 미국이 상품 교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홍콩이 들어 있다. 또 미 기업 1300여곳이 홍콩에서 비즈니스하고 있다.

동시에 홍콩은 중국 기업의 상품수출과 자본수입의 관문이기도 하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전에 홍콩은 중국산의 경유지였다.

중국 기업인들은 홍콩 수입상과 짜고 저금리 달러 자금을 끌어들였다. 홍콩 수입상과 주고받은 신용장엔 실제 액수보다 많은 금액이 적히곤 했다. 중국 수출 기업은 뻥튀기 신용장을 근거로 조달한 저금리 달러 자금을 본토 그림자 금융시장에 돌려 금리 차이를 따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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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우 중국 수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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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거치는 중국 수출은 최근 줄어



중국 수출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줄고 있다. 1990년대엔 40%를 웃돌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10% 선에 그쳤다.

반면,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하는 기업공개(IPO) 가운데 지난해엔 70%가 홍콩에서 이뤄졌다. 홍콩이 여전히 외국 자본 창구로는 구실 하는 셈이다. 홍콩이 닫히면 중국 기업은 외국 자본보다는 자국 내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뜻밖의 분야에서 중국이 홍콩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특별지위 박탈 전까지 정보기술(IT) 등 첨단 기술이 홍콩으로 이전되는 것을 거의 통제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 본토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극력 막았다.

중국 기업들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활용해 미국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영국 경제분석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최근 보고서에서 “홍콩 특별지위가 박탈되면, 중국은 첨단 기술 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민감한 기술이 인민해방군에 흘러 들어갈 위험”을 도드라지게 강조한 이유다.



홍콩, 금융허브 위상은 장기적으로 약해질 수도



홍콩은 ‘돈의 자유’가 충만한 곳이었다. 고정환율제(페그제) 덕분에 환차손 위험이 아주 낮았다. 금융규제가 변덕스럽지 않았다. 외국 자본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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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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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시위와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 보안법 제정 등이 자유로움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여기에다 미국이 특별지위마저 박탈했다.

미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키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돈은 자유에 아주 민감하다”며 “중국이 저렇게 대응하면(강경 대응) 결국 홍콩이란 황금알을 낳은 거위를 놓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단, 행키 등의 경고는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고 있다. 외화자산 등 데이터를 보면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



홍콩 경제 대한 중국 지배력은 이미 탄탄해



블룸버그 통신은 “서방 펀드 등이 대륙 시장을 겨냥해 최근 중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하고 있다”며 “이들 펀드 매니저들에게 홍콩은 중국 기업에 접근하는 창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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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 서방 기업보다 공격적으로 홍콩 사무실 개설. 핑크 선: 중국 기업, 노란 선: 일본 기업, 검은 선: 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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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미 기업이 특별지위 박탈 때문에 홍콩에서 빠져나가면, 홍콩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배가 더욱 강화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 데이터를 보면, 2018년 이후 중국 기업이 홍콩에 사무실을 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홍콩에서 여러 은행이 힘을 모아 제공하는 자금(신디케이트 론) 가운데 중국 시중은행이 담당하는 비중도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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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신디케이트론 시장에서 중국 금융회사(연도별 왼쪽)가 차지하는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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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홍콩의 중국화는 상당히 진행된 셈이다. 결국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은 양날의 칼이다. 중국을 압박하기는 하지만, 미국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폴-로드리그 교수 말대로 최종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 국가주석이 기대나 예상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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