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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유레카] 디제이의 7432, 김종인의 18-0 / 손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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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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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는 것으로 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이 마무리됐다. 보수 야권과 언론은 ‘슈퍼 여당’이 1988년 13대 국회 이래 유지돼온 의석수에 따른 상임위 분점 관행을 깼다고 비판한다. 또 이 관행 수립에 핵심 구실을 한 김대중(디제이) 전 대통령의 뜻을 디제이의 후예들이 어겼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들어맞지 않는다. 당시 야당 대표 디제이는 상임위 분점을 요구하는 처지였다. 사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더 적합한 비교 대상이다.

한국의회발전연구회의 ‘국회의 원구성 협상 과정 연구’ 보고서(2005년)에 13대 국회 상황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당시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125석을, 평화민주당(총재 김대중) 통일민주당(총재 김영삼) 신민주공화당(총재 김종필) 등 ‘야 3당’은 164석을 차지했다. 초유의 ‘여소야대’였다.

야 3당은 군부독재의 후신인 노태우 정권 견제를 위해 상임위 분점을 요구했다.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보다 총재의 지침이 절대적이던 당시 제1야당을 이끌던 디제이가 그 선봉에 섰다. 41일간의 협상 결과는 민정당, 평민당, 통민당, 공화당 각각 7:4:3:2. 법제사법위원장은 민정당이 챙겼다.

디제이는 법사위보다 주요 지지 기반인 농어촌 득표에 긴요한 농림수산위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민정당 역시 농림수산위를 고집했다. 협상 교착과 국회 공전에 대한 언론 비판과 다른 야당의 불만이 커졌다. 결국 디제이가 결단했다. 농림수산위를 여당에 주고 그다지 원하지 않던 경제과학위를 갖는 데 합의한 것이다.

2020년 6월28일 밤 여야 원내대표단은 법사위를 전반기엔 여당이, 후반기엔 그 시점의 집권 여당이 갖는 쪽으로 의견 접근을 봤다. 상임위원장은 여야 11:7로 합의한 터. 하지만 통합당 내 강경파와 김종인 위원장의 반대로 협상이 결렬됐다는 뒷얘기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19일 “상임위원장 18개 다 포기하고 가자”, 29일 “(협상 결렬이) 장차 큰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압박·양보로 정권 견제 발판을 마련한 디제이와 달리, 여당에 ‘독주 프레임’을 씌우는 방식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통합당이 결렬 책임을 몽땅 디제이의 후예에게 돌리는 건 비겁하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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