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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주차장 짓겠다고 나가라니…" 삶터서 내쫓기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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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펭귄마을에 무슨 일이
관광객 늘면서 일대 주차난 몸살
관청 주차장 조성 사업 내세워
집ㆍ 땅 수용… 주민들 내몰릴 처지
한국일보

광주 남구가 양림동 펭귄마을 일대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펭귄마을 옆 동네 가옥들을 헐고 지하에 공영주차장(빨간 선)을 조성키로 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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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양림동 펭귄 마을. 무릎이 아픈 마을 어르신들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1970~80년대 촌스런 풍경이 좁은 골목길 곳곳에 펼쳐져 '시간을 추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아 작년 한 해 15만여명이 이 마을을 찾았다. 올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그 수가 크게 줄었지만 얼마 전 마을 일부가 공예특화거리로 단장되면서 다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관(官)에선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사업 우수 사례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엔 골목경제 활성화라는 부수효과가 쏠쏠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펭귄마을과 골목길을 끼고 붙어 있는, 그러니까 주민들 표현대로라면 "펭귄마을 뽀짝('바싹'의 전라도 사투리) 옆 동네" 주민들이 요즘 단단히 뿔이 나 있다. 행정당국이 "관광객들을 위해 주차장을 만들겠다"며 주민들의 땅과 집을 수용하겠다고 나서면서다. 30일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차에 밀려 집에서 내쫓기게 됐다"며 새된 목소리를 냈다. "누가 주거환경개선을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멀쩡한 집들을 허물고 소공원을 만든다고 떠들어대더니 9년 동안 나 몰라라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소공원 부지에 지하 주차장을 만든다고 집을 비우라고 한다. 횡포도 이런 횡포가 어디 있냐." 마을 초입에서 원룸을 운영하는 임모(65)씨는 "문재인 정부 철학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보다 차가 먼저더라"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한국일보

남구 양림동 펭귀마을과 컬러마을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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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가 임씨의 원룸 등이 포함된 1,296㎡ 부지 지하에 차량 28대를 댈 수 있는 공영주차장을 만들겠다고 나선 건 지난 2018년 12월. 최근 몇 년 새 구도심인 양림동 일대 관광 인프라 개발로 인해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가중되고 있는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당초 이 주차장 부지는 남구가 양림동 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면서 2011년 8월 소공원으로 지정했던 곳이다. 현재 이 부지에 세입자를 포함해 27가구(30여명)가 편입돼 있다.

그러나 그간 소공원 조성엔 뒷짐을 지다시피 했던 남구가 돌연 48억원을 들여 소공원 부지 지하에 주차장도 조성하겠다는 중복 결정을 알리고 급기야 토지 수용까지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달부터 남구는 지주와 이해관계인을 대상으로 손실보상 협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남구 관계자는 "이달부터 양림교~펭귄마을 앞 백서로 120m와 카페 등이 들어선 오기원길 250m 구간에 주차 홀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주차난 해소엔 역부족"이라며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선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삶의 둥지에서 내몰리는 건 시간 문제 아니냐"고 불안해 했다. 그도 그럴 게 2017년 광주시와 남구가 펭귄마을 내 일부 가옥 등을 고쳐 공예특화거리로 조성한다면서 개발대상지에 편입된 25가구를 내쫓았던 모습을 생생히 목격한 터였다. 한 주민은 "얼마 전엔 구청에서 골목을 비추던 보안등 전선마저 끊어버렸다"며 "이게 주민들에게 나가라고 압박하는 게 아니면 뭐겠느냐. 3년 전 펭귄마을 주민들을 내쫓을 때와 다르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부 주민들은 "도대체 누굴 위한 도시재생사업이냐"고 분노를 표출했다. 이 마을 토박이 김모(61)씨는 "차량 280대도 아니고 고작 28대 주차할 주차장 만들겠다고 멀쩡한 집을 허물고 주민들을 내쫓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이것이야 말로 관이 주도해 주민들과 세입자들을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 또 하나의 '관트리피케이션'이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광주=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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