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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사이다를 넘어 생수 언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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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반적으로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올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보고서에서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이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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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독자가 언론을 불신하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최근에 내놓은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에는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뉴스의 신뢰 하락이 부분적으로는 독자의 편향적인 뉴스 이용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즉, 독자가 자신의 관점에 맞는 뉴스를 찾아 읽는 경향이 강할수록, 그렇지 않은 뉴스나 언론사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개연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가 해마다 나라별로 하는 뉴스 전반에 대한 독자의 신뢰 조사에서 한국은 40개국 가운데 올해도 꼴찌였다. 그에 더해 한국은 독자의 뉴스 이용 편향성도 상당히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와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언론사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44%로, 40개국 평균 28%보다 16%포인트 높았다. 한국보다 이 수치가 높은 나라는 터키, 멕시코, 필리핀 정도였다. 반면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4%로 체코, 헝가리, 대만, 폴란드(이상 3%) 다음으로 낮았다.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관점에 맞는 뉴스를 골라볼 가능성이 더 컸다.

디지털 환경에서 오는 ‘확증편향’과 불평등에 따른 포퓰리즘 정치의 확산으로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수대표제-양당제에 뿌리를 둔 승자독식의 정치문화가 시민들에게 ‘반감의 정치’ ‘응징의 정치’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시민이자 독자의 이런 변화에 맞춰 언론의 정파성도 커지는 추세인데, 한국에서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사이다 언론’ ‘해장국 언론’ 또는 이른바 ‘어용 언론’이 디지털을 무대로 무성하게 자라났다. 언론학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지난해 말에 한 강연에서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가, 이 기준에 따라 의인과 참언론인이 결정된다”며 “수용자들은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 보고서가 보여주는 현실은 독자의 신뢰를 높이려 여러 궁리를 하는 <한겨레> 같은 언론사에 고민을 더해준다. 일차방정식을 겨우 푸는데 이차방정식이 시험에 나온 기분이다. 사실확인을 철저히 하고, 원칙을 지켜 공정하게 보도하면 독자의 믿음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가 나의 정치 성향에 들어맞는지, 내 편을 드는지에 독자의 믿음이 달려 있다면, <한겨레>도 이에 발맞춰 ‘사이다 언론’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한겨레는 독자의 후원이나 디지털 구독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영 기반을 마련하려 하는데, 독자의 신뢰가 없다면 이런 것들은 한발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수가 났을 때 가장 귀한 게 역설적으로 ‘한 통의 생수’란 사실은 한겨레 같은 전통 매체가 무얼 해야 하는지 힌트를 준다. ‘사이다 언론’은 이미 유튜브 등에 차고 넘치니 더 보탤 것은 없다. ‘생수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누구 편이냐에 따라 사실과 판단이 흔들리는 진영논리다. 언론이 정파성을 띠는 것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니나, 그 정파성이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일관된 입장을 가질 때 진보든 보수 언론이든 제대로 된 비판 기능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상황이라면, 한겨레가 ‘촛불 혁명’의 추억은 잠시 접어두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그리고 약속하고도 집을 팔지 않은 다주택 보유 청와대 비서관들의 자리가 흔들릴 정도로 내실 있고 강도 높게 현 정권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것이 ‘생수 언론’의 자세일 것이다.

‘생수 언론’의 또 다른 과업은 공동체의 결속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는 반감의 정치문화와 극단으로 치닫는 공론장을 거부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뉴스라도 골고루 읽어보는 독자가 늘도록 하는 것이며, 대화와 협력의 문화가 퍼지게 하는 것이다. 먼 길이겠지만 진보의 가치를 가다듬고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나갈 때 독자의 믿음도 돌아오리라 믿는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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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보고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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