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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읽기] 돌봄군 창설을 상상해본다 / 우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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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는 대체로 사제(私製)를 좋아한다. 예전에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대 배치받을 때 제일 처음 하는 일 중 하나가 훈련소에서 받은 전투모 대신 군장사에서 파는 사제 전투모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군에서 준 전투모는 어딘가 빵모자 같고 쭈글쭈글했다. 사제 전투모가 쓰기에도 편하고 쫙 펴진 것이 자세도 잘 나왔다.

공공부문에서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는 대체로 어설프고 소비자의 수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조달 과정의 문제이기도 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공공부문 문화에서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가능하면 민간이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찾는다. 민간에서 공급되는 재화나 서비스는 시장의 경쟁을 통해 생존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에서 공급되는 서비스보다는 가성비가 높다.

예외적으로 공공에서 공급하는 서비스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돌봄 서비스이다. 특히, 생애주기 시작에 제공되는 보육과 마지막에 제공되는 노인 장기요양이 그렇다. 어린이집의 경우 2019년 기준 약 3만7천곳이 있다. 이 중 12% 정도가 국공립 어린이집이다. 부모들은 민간, 가정형 어린이집보다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한다. 신혼부부가 임신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 놓는 일이라고 할 정도로 국공립 어린이집은 인기가 있다. 장기요양 시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집처럼 국공립 노인 장기요양 시설 증설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크다.

왜 사람들은 돌봄 서비스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공급하는 것을 선호할까? 근본적으로는 서비스에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유아나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받는 서비스의 양과 질에 대해 평가하고 그걸 보호자에게 말하기 어렵다. 서비스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으면 사람들은 적절한 가격을 내고 합당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민간시설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유아나 치매 부모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급자의 선의를 기대하며 시설에 보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호자들은 서비스의 기본 수준이 보장될 수 있는 국공립 서비스를 선호하게 된다.

문제는 국공립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법이다. 방법 중 하나는 국공립 시설을 대규모로 짓고 돌봄 관련 서비스 종사자들을 사회서비스원 같은 공공기관에 대규모로 고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재정 제약이나 공공부문 비대화를 싫어하는 국민 정서상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상상력을 발휘할 때이다.

대안은 ‘돌봄군’을 창설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여하고는 있지만, 병역은 병역법에서 남성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걸 개정해서 여성에게도 병역을 부여하되 대체 복무의 형태로 돌봄역을 부여하는 돌봄군을 창설하는 것이다. 굳이 돌봄역을 여성에게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남성의 경우도 현역 복무가 어렵거나 대체 복무가 필요한 경우에는 돌봄역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또한 여성이 원하는 경우 일반 병역에 대한 선택도 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 된다. 돌봄역은 보육과 장기요양 서비스에 집중하되, 필요시 병원의 중증 환자에 대한 간병 서비스나 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할 수 있다.

돌봄역의 경우에는 국방부에서 징집하되 보건복지부로 파견하여 기초 돌봄교육과 주특기 교육을 이수하고 현장에 배치하면 된다. 돌봄역 이수자의 특기와 전공에 따라 적절한 임무를 부여하면 된다.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집이나 요양원의 운전을 하면 되고, 행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정을 하면 된다. 돌봄서비스의 전문성과 지속성의 유지를 위해 기존의 돌봄 관련 종사자나 전공자는 소정의 과정을 통해 돌봄군의 간부로 편입시키면 된다.

돌봄군이 창설되면 만성적으로 모자라던 돌봄서비스의 부족분을 메울 수 있게 된다. 저출산 문제에 어느 정도 해답이 될 뿐만 아니라 치매 어르신을 돌보느라 발생했던 부부간 형제간 갈등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전 국민에게 국공립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진정한 돌봄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돌봄 때문에 저하되었던 노동공급이 증가하여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그간 병역의 불평등으로 인해 생겼던 가산점 문제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사라진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누군가를 돌보면서 산다. 살고 나서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돌보고 나서 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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