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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시장주의자’들이 이재용 기소를 외치는 이유는?…“시장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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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와 공정성 근간 흔든 사건”

한겨레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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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기소해야 한다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6일 늦은 시각 심의위의 판단이 나온 직후 증권사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 전업투자가들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황당하다’ ‘어이없다’, 심지어 ‘이게 나라냐’라는 단말마의 비명 같은 짧은 의견을 올렸다. 동종 업계 지인들로 구성된 온라인 단체방은 더 들썩였다. 재벌 개혁·사법 정의보다 수익률에 더 민감한 이들이 ‘뜨거워진’ 이유는 뭘까.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30일 <한겨레>에 “합병비율, 시세조종, 분식회계와 같은 사안은 시장과 관련 법 모두에 대한 정통한 이해가 없으면 온전히 판단하기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를 금융위원회가 확정하는 과정도 1년 이상 걸렸고 진지한 토론이 있지 않았나”라며 “사건의 내밀함을 알기 어려운 심의위원들이 수사도 하지 말라는 판단을 내린 건 당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익명을 요청하면서도 “자본시장에서 몇 년만 굴러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며 “최소한 제기된 혐의에 대한 재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에서 가치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매니저는 “이 부회장이 받는 혐의는 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와 맞닿아 있다”며 “이런 사안을 얼렁뚱땅 넘어가면 가치투자 전략은 한국 사회에서 설 땅이 없어진다”고 푸념했다.

이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에도 이런 투자업계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이 포럼은 자본시장에 직접 참여하고 있거나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투자가나 법률가,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회견도 심의위의 권고가 나온 직후 온라인 단체방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란 회원들의 얘기가 나왔고 그 결과물이 이날 회견이었다. 포럼의 한 임원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한국 자본시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 포럼이 이 사안에 침묵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내놓은 입장문은 투자업계의 불만과 우려를 좀 더 명료하게 담은 표현으로 가득하다. “(이 부회장 사건은) 자본시장과 회계처리에 관한 깊은 이해와 지식, 경험이 없이는 판단이 매우 어렵다.” “심의위 결론은 삼성이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여론전의 결과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분식회계가 기소조차 안 된다면 위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심의위 결정은 한국 자본주의를 과거로 퇴보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면죄부는 편법승계를 계획하는 수많은 재벌 2, 3세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일이다.” “불기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악화할 것이다.”

회견에선 삼성과 재계에서 흘러나오는 이 부회장 옹호 주장을 반박하는 주장도 나왔다. 류영재 포럼 대표는 “삼성 정도의 기업은 이미 총수 한 사람의 개인기로 방향성이 정해지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삼성은 경영이 시스템화돼 있고 걸출한 전문경영인도 많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기소될 경우 삼성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김규식 스카이투자자문 고문(변호사)은 “자본시장이 공정하게 작동돼야 자원이 생산성이 높은 쪽으로 흘러간다. 자본시장의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원 배분에 왜곡을 불러와 시장과 경제의 성장에 제약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총수와 기업을 동일시 하며 총수가 잘 되어야 기업은 물론 나라 경제도 좋아진다는 세간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송채경화 김경락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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