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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말 잘 들으라고 아이 때리는 것, 부모 권리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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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고완석] 여덟 살 우리 큰애는 밥을 너무 안 먹는다. 정성 들여 차린 밥상을 보고도 전혀 반가워하지 않고,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주어도 인상을 찌푸린다.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가락 밥을 뜨다가 결국에는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 안 되냐고 묻는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거나 목이 아프다고 하며 그만 먹으면 안 되냐고 애원한다. 그런 아이를 볼 때면 너무 속상하다. 아니 속상하다는 표현보다는 사실 화가 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네 살 둘째는 물놀이를 너무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은 씻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씻자고 하면 도망 다닌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는 반대로 씻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탕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래 실컷 놀아라' 하고 기다려주었지만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물놀이에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다.

지난 주말 우리 집 풍경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라면 나처럼 화가 나고 더 나아가 분노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특히,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 징계권 삭제, '체벌은 위법'이라고 규정하는 것

베이비뉴스

법에서 '징계권'을 삭제한다는 것은 삭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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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각한 아동학대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부모의 '징계권’이 삭제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훈육권을 과도하게 침범하는 것 아니냐며 '징계권’ 삭제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징계권 삭제’에 대한 찬반 여론이 뜨겁게 대립되고 있는 가운데 '징계권’이란 무엇이며 '징계권 삭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징계권은 이 내용을 의미한다. 1958년에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개정이 없었던 민법 제915조 징계권은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체벌로 자녀를 훈육할 수 있다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5월 정부에서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도 징계권이란 용어가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대상으로만 오인할 수 있는 권위적 표현'이라고 지적하며 용어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이미 아동복지법 제5조에서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계권 삭제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통념상 징계 수단으로 체벌을 떠올린다. 그래서 징계권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많은 아동학대 행위자들이 본인의 학대 행위를 아이를 위한 훈육과 교육 차원의 행동이라고 변명하고 있기 때문에 징계권 삭제의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징계권 삭제’를 통해 '체벌은 위법’이라고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분명한 교육적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법무부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에서도 아동권리가 중심이 되는 양육환경을 조성하고 아동에 대한 부모의 체벌 금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민법 제915조 '징계권’을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굿네이버스를 포함한 아동권리옹호 민간단체들은 작년부터 'Change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징계권 삭제’는 아동학대예방과 아동에 대한 올바른 훈육을 위한 첫걸음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학대와 체벌로 고통 받고 있는 아동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루빨리 민법 제915조 '징계권’이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지난 주말 우리 집 상황을 떠올려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나를 분노케 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다운 행동을 했을 뿐이고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역시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 잣대로 아이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또한 내 뜻대로 아이들이 행동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역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여덟 살 딸, 네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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