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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김준엽 현대사-장정(長征) - 김준엽 [허성호의 내 인생의 책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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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어른의 부재

[경향신문]

경향신문

대학교 4학년 때 윤봉길 전기를 쓴 적이 있다(경향신문 2008년 12월25일자 참조). 시중에 나온 윤봉길 전기마다 평균 20여개씩 오류가 나와 우리 동네 초1 꼬마 재민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고 집필을 마치자 추천사를 누구에게 부탁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때 찾아간 인물이 <장정>의 주인공 김준엽. 그를 눈앞에서 만나 두 손을 맞잡은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장정>은 1944년 일제 학도병으로 중국 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6000리길을 헤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에 참가한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김준엽의 회고록이다.

존재 자체로 역사였던 그는 해방된 조국에서 역사학자의 길을 걸었다. 고려대 총장 시절 전두환 정권의 집요한 겁박에도 시위 학생들과 해직교수들을 끝까지 지키고 강제 퇴임당한 시대의 참스승이다.

당시 집필에 열중하던 그에게 추천사 청탁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대신 젊은이가 기특한 일을 한다며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는 친필과 함께 사인을 선물로 받았다.

그날 이후 사소한 일이라도 그를 흉내라도 내고 싶어 내 생일을 기념하지 않고 살고 있다.

3년이 지나 초년병 PD로 지내던 여름날, 그의 부고가 들려왔다. 향년 92세. <장정> 주인공의 죽음은 내 마음속에서 ‘어른이 없는 한국사회’의 개막을 의미했다.

역사는 현실 세계와 정반대로 더 젊은이에게 선대를 평가할 특권을 부여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그보다 출세한 인물은 여럿 있으나 그만큼 존경할 만한 어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실에 살지 않고 역사 속에 살며 청년의 용기를 길러낸 ‘대한민국의 어른’ 김준엽의 부활을 기다린다.

허성호 | E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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