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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오늘의시선] '인국공 사태'의 삼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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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 강행 추진, 공정성 등 불만 폭발 / 정치적 갈등·기업 부담 심화 후폭풍 우려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협력업체 비정규직 보안검색원 1902명을 청원경찰로 바꿔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이날 본사 노조는 사장실로 찾아가 현재 정규직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정규직화하는 직접고용을 중단하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반면에 정규직화의 대상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장의 기자회견장으로 몰려가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세 갈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첫 번째 파장은 취업준비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제기한 공정성의 문제이다. 취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공채를 위해) 학원 다니고 노력하는 사람은 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같은 날 청와대 게시판에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 주십시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시험도 없이 다 전환하는 게 공평한 것인가”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인가”라고 물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도 비판 의견이 쏟아졌다. 한 직장인은 “노력이 무시 받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이번엔 너무하다”고 썼다.

세계일보

배규한 백석대 석좌교수


실제로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뽑을 때 엄격한 기준이나 절차를 적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감사원은 인국공 등 공공기관 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 결과, 고용세습, 친인척 채용, 기타 불공정한 방법으로 비정규직 채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를 수없이 적발한 바 있다. 감사원은 비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의 경우 정규직에 비해 취업 문턱이 낮고 간소한 절차로 채용되는데도 객관적 평가절차 없이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년들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공공기관 채용에서 불공정과 반칙이 자행된 데 대해 분노한 것이다.

두 번째 파장은 정치권에서 일어났다. 인국공 사태는 ‘가짜뉴스’로 촉발됐다는 청와대의 해명이나 ‘대학생들의 특권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여당 중진의원의 엉뚱한 주장이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인국공 정규직화 논란의 시작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직후 인천공항 방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했고, 정일영 당시 사장은 “공항 가족 1만명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인국공은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2년 반 동안 진통을 겪어왔다.

인국공 사태는 단발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인국공은 보안검색요원 외에 비정규직 노동자 9785명도 곧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하니, 직원 1400명 회사에 1만명을 새로 정규직화 하는 데 따른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대통령의 공언에 따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다른 공기업은 물론, 그 외 공공기관이나 민간 회사들에까지 계속 파급될 것이다.

앞으로 닥칠 세 번째 파장은 더욱 심각하다. 비정규직 제도는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의 노동유연성을 높이고 임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노동의 유연성 제고는 급격한 과학기술 발달과 평생직장 개념의 변화에 따른 시대적 흐름이기도 한데, ‘비정규직 제로’라는 정치적 공약은 노동의 경직성을 급격히 높여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인국공은 올해 3200억원 적자를 예상한다는데, 1만여 명의 정규직화에 따라 엄청나게 늘어날 인건비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다른 공공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부실화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가 개입하면 시장이 무너지고, 시장이 무너지면 기업이 사라진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노동 법제화, 정부를 등에 업은 민노총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일자리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인국공 사태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이유 있는 저항이다.

배규한 백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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