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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정동길에서]민주당, 지금 ‘힘자랑’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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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집값이 또 날뛰려나 보다. 무엇보다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이달 한국은행의 자료를 보면 1년 후 집값에 대한 소비자 심리를 보여주는 ‘주택가격전망CSI’는 112로 전달보다 16포인트 상승했다. 2018년 9월(19포인트 상승) 이후 가장 높게 뛴 것이다. 막차라도 타겠다며 집을 구하기 위해 내는 은행빚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경향신문

박재현 미디어전략실장


이런 상황에서 규제지역을 확대하고 실거주 요건을 강화한 ‘6·17 부동산 대책’은 ‘땜질 처방’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김포·파주 등 비규제 지역은 물론이고 잠실 등 규제지역도 집값이 뛰었다. 2000년 이후 ‘역대급’ 대책이 나오면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꿈틀거리는 현상이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22번째 대책을 준비해야 할 정도다.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추가 조치를 할 수 있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6·17 대책도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소진한 것은 아니다”(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라며 ‘더 강력한 규제책’을 암시하지만 그 속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서릿발 같은 비장함은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대책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기도 하지만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집값 안정에 대한 각오는 남달랐고 정부의 대책도 강력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구멍’은 항상 (숨겨져) 있었다. 정부는 부동산 불안의 원인을 다주택자에게 뒀지만 이들에게 ‘꽃길’을 깔아줬다. 임대업자로 등록하면 각종 세금 혜택을 안겨줬으니 투기세력은 임대업이라는 옷을 입고 주택들을 쓸어 담았다. 2017년 12월에는 장기 임대와 소형 평수 위주로 다주택 임대등록업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했다. 보유세 부담을 줄이고 양도소득세 중과까지 피할 수 있는데 집을 내놓을 다주택자는 거의 없다.

융단폭격처럼 규제해도
집값은 꺾이지 않았다
대책보다 정치가 필요하다
일관성 있게 나가기 위해선
민주주의 역량이 절실하다

이제 정부의 기습 군사작전과도 같은 정책은 그 효용을 다했다. 전격성과 과감성으로 집값을 잡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서운 법인데 칼을 빼 수십번씩 휘두르고 규제의 융단폭격에도 집값은 꺾이지 않았다. ‘충격과 공포’는커녕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불로소득 주도형”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지금 부동산은 전시상황에 버금간다. 정부 대책만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정치가 필요한 시기다.

전쟁이나 심각한 불황은 경제 구조를 바꾸고, 그 변화에 따른 계층 간의 정치적 타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도 정치적 갈등은 심각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4선을 달성할 만큼 높이 평가받은 것은 대공황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공황 이후의 정치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개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정치적 갈등과 불확실성’ 논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장점이다. 갈 길은 멀더라도 일관성 있게 뚜벅뚜벅 나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 역량을 보여줘야 할 민주당은 지금 설득과 합의보다는 176석의 힘을 바탕으로 강경·비타협 노선을 선호하고 있다. 국회 개원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전체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체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것은 32년 만에 처음이다. 물론 통합당이 법사위원장 배분, 국정조사 등 ‘가합의안’을 거부한 탓도 있겠지만, 국회 운영을 과거로 회귀시킨 것은 집권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협치가 절실한 위기 상황에서 ‘승자 독식’의 추진력은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3차 추경’이 급하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커지는 경제적·사회적 위기감을 추경만으로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일자리는 쪼그라들고, 가계소득과 자산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저금리와 재정 확대로 시중 유동성은 넘친다. 당·정·청이 머리를 맞대고 효과와 부작용을 따지고 검증해가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과 부정적 여론도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움직인다. 시장을 움직일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 역시 야당의 협조가 있어야 속도를 낼 수 있는 사안이다. 민주당은 지금 힘자랑할 때가 아니다.

박재현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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