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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이한우의 간신열전] [38] 뽕나무를 속에서 말려 죽이는 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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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은 기원전 259년 진(秦)나라에 맞서 장평(長平)을 지키던 장수 염파(廉頗)를 조괄(趙括)로 바꿨다가 대패해 40여 만 대군을 잃게 만든 혼군(昏君)이다. 한나라 유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는 어떤 객(客)이 효성왕을 알현하고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실려 있다.

"세상에는 이른바 상옹(桑雍)이라는 것이 있는데 왕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들어본 적 없다."

옹(雍)이란 곧 종기[癰]를 말하는데 뽕나무 속에 좀이 슬면 속에서 나무를 갉아먹어 말라죽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암(癌)인 셈이다. 이어 객이 말했다.

"상옹이란 바로 왕의 좌우에 있는 측근과 총애를 받는 자, 그리고 내시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왕이 취혼(醉昏)한 틈을 타서 자신들이 왕에게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안에서 이런 짓을 해대면 조정 대신들은 그들을 위해 밖에서 법을 왜곡합니다. 해와 달이 겉으로 빛을 발하고 있지만 해와 달을 해치는 것은 안에 있으니 재앙은 총애하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당시 건신군(建信君)이라는 사람이 효성왕의 각별한 총애를 믿고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는데 상옹은 바로 그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은 여러 상옹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책에는 또 위괴(魏魁)라는 사람이 건신군에게 충고하는 말이 나온다.

"호랑이가 덫에 걸려 화가 나면 발바닥을 찢고 달아납니다(호노결번·虎怒決蹯). 왕이 위험에 처하면 당신은 왕에게 발바닥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조국 전 장관이 떠난 상옹 자리를 이으려는 듯 추미애 법무장관의 최근 발언들이 사납기 그지없다. 귀를 더럽힐 정도다. 오죽했으면 위괴처럼 여당의 조응천 의원조차 추 장관의 거친 언행에 대해 “한 번도 경험 못 한 광경”이라며 충고를 했겠는가?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호노결번하는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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