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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창업창직] 가상의 공간에 무한 상상력을 덧칠하다! VR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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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이 만났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VR(가상현실)’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VR 아트’ 이야기다. VR 아트는 가상 공간에서 나만의 상상을 현실로 그려내는 마법과도 같다. 한국VR아트연구소 이재혁 작가는 국내 1세대 VR 아티스트다. 가상으로 펼쳐진 무한한 공간 속,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그를 만났다.

한겨레

한국VR아트연구소 이재혁 작가. 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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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아트’의 정확한 뜻이 뭔가요?

VR 아트란 말 그대로 가상현실과 예술이 합쳐진 말로, VR을 활용해서 하는 모든 예술 활동 또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작품이죠. 보통 VR 장비라고 하면 생각나는 헤드기어와 조이스틱을 각각 ‘HMD(Head Mounted Display)’, ‘컨트롤러’라고 하는데요. 관객들은 HMD를 쓰고 자유자재로 컨트롤러를 움직이며 VR 아트를 감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작품을 가상현실 속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AR(증강현실)이나 3D 프린터를 통해 현실로 불러오는 등 여러 아티스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을 텐테요. ‘VR 아티스트’를 직업으로 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조각을 전공하며 순수예술 작가를 꿈꾸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공간 활용이나 재료의 무게 등에 제한이 많더라고요. 그러다가 VR이라는 ‘신세계’를 알게 됐어요. 예술 작품을 VR로 그릴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2017년쯤 접한 거예요. 그때부터 독학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프로그램을 익혔죠. VR 아트라는 개념 자체가 생겨난 지 2~3년밖에 되지 않은 생소한 분야라 당시 누구에게 배울 수도 없었어요. VR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예요. 가상세계에서는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제 머릿속에 있는 상상 그대로를 이끌어내서 무엇이든 표현해볼 수 있거든요. 처음 무한한 공간과 광활한 세상으로 들어간 순간,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서 VR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지금은 한국VR아트연구소에서 VR 아트 퍼포먼스와 전시,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열심히 만드는 중이랍니다.

VR 아트 퍼포먼스나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스토리 구성부터 시작해 모든 과정이 VR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저는 구글이 2016년 개발한 ‘틸트 브러시’라는 툴을 이용해서 주로 작업하고 있는데요. 우선, 구상한 스토리의 뼈대를 만들기 위해 일단 공간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 공간에 맞게 콘티를 짜서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바로 채색 작업을 합니다. 특수효과를 입히고 배경음악을 삽입하거나 공연의 흐름에 맞게 순서를 맞추는 마무리 작업 후에 결과물을 시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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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VR 아티스트의 작품은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오브제가 아닌 ‘공간’ 자체가 스토리가 된다. 하나의 공간에 메시지를 입히고 관객들이 이를 찾아낼 수 있게 한다. 그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상상 그 이상의 예술을 창작한다. 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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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가는 듯하면서도 어렵네요. 웹툰 작가들이 태블릿 PC에 작업하는 것처럼, VR 아티스트는 가상공간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되나요?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조각을 한다고 말하면 상상이 좀 되려나요? 전통적인 미술 표현 방식은 캔버스나 종이 같은 2차원 평면에 대고 그리는 것이었다면 VR 아트는 작가가 HMD를 쓰고 3차원 입체 공간, 즉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작업을 하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허공에 서서 손을 허우적거리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가상공간 안에서 작품을 창조하는 중인 겁니다.(웃음)

그렇다면 관객들은 VR 아트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나요?

보통은 VR 아트 공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어요. VR 아티스트인 제가 VR 기기를 착용하고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면, 관객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가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시선은 제가 HMD로 보고 있는 시점과 몸짓을 따라가고 스토리를 공유하며 저와 함께 공간을 탐험해나가는 거예요. 쉽게 말해 ‘1인칭 영화’라고 보면 되겠네요. 제 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은 저와 같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도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는 암흑의 배경에서 하나의 빛이 생겨나고, 색색의 빛이 모여 점차 공간을 이루는 장면을 라이브로 그려내는 거예요. 올해 2월에 상암동 빛의 광장에서 이 퍼포먼스를 했는데, 피로한 직장인들에게 도심 속 힐링의 공간을 선물해주고 싶었죠.

정말 장관이었겠는데요. 지금까지 했던 많은 공연 중에 작가님께서 ‘인생작’으로 꼽을 만한 퍼포먼스가 있다면요?

2018년에 한 대학교 행사에서 서울오케스트라와 협업해 진행했던 <영원한 보석> VR 아트 퍼포먼스가 떠오르는데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OST가 흐르면, 그 음악에 맞춰 모험해나가는 과정을 웅장한 스케일로 표현한 작품이었죠. 동굴을 탐험하고 바닷속에서 전투를 펼치는가 하면, 하늘 위로 올라가서 구름을 타기도 했어요. 열정적으로 공연을 끝내고 나서 HMD를 딱 벗는데 학생들이 전부 기립박수를 치면서 환호하고 있더라고요. ‘좌절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학생들이 공감해준 것 같아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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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girl)-소녀상>, VR Artist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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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나 ‘평화의 소녀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 인상적이었어요. 역사적인 주제에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있나요?

‘VR로 보는 역사’라는 콘텐츠를 구상하다가 <Yi Sun-shin 이순신 장군> 작품을 제작하게 됐어요. ‘명량해전 당시 회오리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전투 현장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들어서 VR로 재연했죠. 관객들이 HMD를 쓰고 역사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면, 기울어진 배 위에서 혈투를 벌이며 싸우고 있는 병사들 사이에 서 있는 것이 가능한 거예요. 또, 평화의 소녀상을 주제로 한 작품 <소녀(girl)>는 개인적인 바람을 담은 작품이에요. 제가 의경으로 근무했을 당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면서, ‘소녀가 언젠가 편안히 걸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간절히 염원했던 마음을 표현했어요.

VR 아트 분야에서 1세대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떤 VR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나요?

VR 아트는 신생 분야라 대중들이 아직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서 활동을 넓혀나갈 때 힘든 점이 있어요. 하지만 이 단계만 넘어서면 누구든 분명 VR 아트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저는 1세대 VR 아티스트로서, 이 분야가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고, 제가 가진 노하우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할 예정입니다. 훗날 VR 아트를 널리 알린 아티스트로 제 이름을 한번쯤 떠올리셨으면 좋겠네요.(웃음)

마지막으로 VR 아트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VR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선 VR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환경에서 작동되는지를 이해한 다음에 꾸준히 연구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VR 아트 도입 초창기부터 프로그램을 혼자 익히며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터득한 것처럼 말이에요. 지금은 VR 체험과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도 많으니 직접 배우면서 한 동작씩 차근차근 시도해보면 좋겠죠? 저희 한국VR아트연구소에서도 교육이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으니 언제든 환영입니다. VR은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구하는 자세를 가지면 미래에 훌륭한 VR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 이재혁 VR 아티스트의 작품이야기

상상이 현실이 되는 무한한 세계 속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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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of light, VR Artist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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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of light>

어둠이 가득한 가상공간은 현대인들의 암울한 마음을 상징한다. 은 어둠을 이기는 빛이 아름다운 생명나무가 되어 현대인의 쓸쓸한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의 라이브 드로잉이다. 도심 속에서 지친 관객들을 화려한 빛이 감싸는 환상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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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e-응시하다>, VR Artist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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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e-응시하다>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곳을 응시하다. 그리고 바라다. DMZ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Gaze-응시하다>에서는 철조망과 지뢰표지판이 가득한 공간 안에서 군화를 입에 문 하얀 사슴이 뛰어간다. 우리가 바라는 희망을 ‘하얀 사슴’, 동시에 DMZ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위험성과 어려움에 대한 메시지를 ‘군화’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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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 휴먼>, VR Artist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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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 휴먼>

국내 최초 XR센터에서 펼쳐진 오프닝 퍼포먼스다.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그리고 그 안에서 나타난 VR휴먼. 나비들의 인도를 받으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마침내 새로운 가상공간으로 입장하는 힘찬 발걸음을 그려냈다.

글 이은주 • 사진 오계옥, 한국VR아트연구소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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