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반차 내러 간 남편에게… "애 엄마는 뭐하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 우울한 면접 이후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아니,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가 관을 짜고 누워 있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박사 이후 반짝반짝한 삶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성별로 까이고 애엄마라 까일 것이라고 사실 예상을 못했었기에 데미지가 컸다.

사실 내가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에는 상당히 많은 이유들이 존재했다. 토익 보기 싫었고, '쎄가 빠지게' 실험했는데 그 연구를 뒤에 놈이 실험 몇 개 더 하고 '제1저자' 가져갈 것을 생각하니 배가 아팠고, 그냥 박사님 소리가 듣고 싶기도 했고, 평생직장으로 전문직에 종사하고 싶었던, 뭐 이런 이유?

사실 나는 박사를 하고 나면 어디든 들어가서 오래오래 길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성별이나, 인종이나, 결혼 유무에 관계없이 말이다. 과학이란 언어로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의 시간과 열정과 건강을 갈아 넣어 박사과정을 보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 결혼 유무로 인해 고배를 마신 취업 현실이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 아니 내 또래 남자 동기들은 결혼했다고 까이지 않는데, 왜 나는 결혼했다고 까인단 말인가. 자존심이 상했다. 정말 말 그대로 '부들부들'이었다. 이러려고 내가 '쎄가 빠지게' 공부한 것인가. 자괴감이 들어 하루하루 짜증이 났다.

베이비뉴스

졸업 때만 해도 나는 내 앞에 평온한 삶이 존재할 줄 알았다 ⓒ윤정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억울했다. 일찍 퇴근을 하는 만큼, 주말에 나올 수 없는 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점심 먹고 쉬지 못하고 일한 적이 더 많으며, 점심을 거르고 일을 했던 적도 있고, 내 나름 시간을 맞춰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도 일을 더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빌어먹을! 옆 팀에 있는 내 남편을 퇴근 시켜줘야 나도 일을 할 것이 아닌가. 우리 아이를 봐주는 이모님도 그래야 퇴근을 할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입주 도우미 써서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만 올인 하면 된다'는 사장의 조언이 말 같은 소리였겠는가?

결국 나중에 남편과 나는 회사를 같이 그만뒀다. 내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고 했다. 사장은 친절하게(= 매우 무례하게) 동료인 내 남편을 불러 나의 퇴직을 언급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퇴직을 하게 됐다.

회사는 물론 난리가 났다. 어차피 애를 키워야 하는 ○박사만 나가면 되지, 왜 일 잘하는 ○과장까지 내보내냐는 거였다. 회사는, 어차피 아이를 키워야 하고 가장도 아닌 나를 내보내더라도 돈 때문에 내 남편은 회사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그렇게 상처만 가득했던 첫 직장과 '안녕~' 하고 집에 '짱 박혔다'. 2차 구직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안 그래도 입사 전 자존감이 떨어졌던 나는 첫 회사에 받은 상처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고민이 늘었다. 어차피 다시 회사에 가도 이런 문제가 발생할 거라면, 회사 가지 말고 시간강사라도 뛸까. 아니면 수능을 다시 봐서 약대나 교대를 갈까. 한 1년 '빡시게' 하면 수능 볼 수 있지 않을까. 1년 8개월 동안 엄마, 아빠보다 이모님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 했던 '땡그리'와 좀 더 많이 놀 수 있게 쭉 아이를 돌볼까. 회사를 다시 간다면 아이를 시댁이나 친정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합가를 할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의 끝은 '결국 아이를 키우며 연구직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로 자꾸만 다가갔다. 내 인생이 허무하고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던 시기였다. 그럼 결국 아이가 있으면 안 되는 거였나. 부정적인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시기를 보냈다.

◇ 엄마와 과학자 사이에서 '양다리' 걸친 아슬아슬한 일상

편하게 잠을 잘 수 없고, 미친 사람처럼 SNS만 뚫어져라 보던 시기였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때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본 기사가 날 끌어당겼다. 장하나 국회의원이 쓴 칼럼이었다. 만나자는 말에 득달같이 땡그리를 끌고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정치하는' 언니들을 만났다. 만나서 펑펑 울고,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엄마와 과학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아슬아슬한 일상을 보내게 됐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돼주었다. 학력, 직종, 생활환경이 모두 다른 이들이지만, 결혼 후 아이가 생긴 뒤 직장에서 겪는 현실은 모두 같았기에 더 위로가 됐다. 세상에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 이렇게 그냥 주저앉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게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매일매일이 전쟁 같다. 실험을 하다가 불현듯 작아진 아이 옷이 생각나 실험 중간에 옷을 주문해야 하고, 아이 간식을 주문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정도로 멀티플레이를 해야 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여전히 아이 등하원은 내 몫이고, 난폭운전을 해가며 출근시간 맞추고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일찍 퇴근하는 죄로 빨래도 내가, 식사 준비도 내가, 뒷정리도 내가 해야 하는 개똥 같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엄마의 삶과 과학자의 삶을 같이 유지하고 있다.

힘들지만 지속은 된다. 지속하다 보면 볕 들 날이 있겠지 싶어 지속 중인데, 사실 빠른 성공으로 가지 못할까 불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별 연구성과 없이 30대를 보내버릴까 봐 매일매일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실험하는 것만큼 재미가 있다. 지금 당장 큰 커리어를 잡을 순 없겠지만, 엄마로서의 삶도 소중하기에 그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보는 것이다.

엄마의 삶과 과학자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고민하지 말라 말해주고 싶다. 둘 다 가능하다. 약간씩 모자란 삶은 될 수 있겠지만 둘 다 놓지 않아도 된다. 완벽한 엄마는 불가능할 것이고, 엄청난 연구력을 지닌 과학자는 될 수 없을지언정, 그래도 엄마이고, 그래도 과학자로 지낼 수 있다.

그렇지만 도돌이표처럼 역시 힘들다. 남편이 제때 퇴근만 해도 난 덜 힘들어진다. 결국 결론이 그렇게 간다. 칼퇴가 답이다. 문제는 이게 잘 안 된다는 거지만, 언젠가 되지 않겠는가.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저작권자 Copyright ⓒ No.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