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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세계타워] ‘대구發 협치’ 상생 마중물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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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지자체장·與 부시장 협력… 국회에 자극제 돼야

고향 후배가 최근 모임 단톡방에서 슬그머니 나간 뒤 소식을 끊었다. 대구의 중심가 동성로에서 5년간 주점을 운영했는데 얼마 전 폐업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아야 하루 2∼3팀이다 보니 매달 수백만원 적자를 견디다 못해 끝내 가게를 접었다. 선배의 아들은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됐는데도 취직을 못 했다. 코로나가 터진 후에는 원서 낼 곳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대구 시민의 팍팍한 삶은 통계로 드러난다. 지난 1~5월 대구의 평균 고용률은 55.4%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포인트 격감했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크게 감소한 것으로 1999년 이후 역대 최대 하락 폭이다. 서울의 강남, 부산의 서면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상권 중 하나로 불리는 동성로는 후배와 같은 이유의 폐업이 늘면서 상권이 급속히 위축됐다. 코로나 이후 유동인구가 70%나 줄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이 “고통의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코로나 충격파가 온 나라를 흔들지만, 최전선이었던 대구 상황은 말로 설명이 안 될 정도다.

세계일보

박태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이런 와중에 희망적인 소식이 들린다. 지역경제 회생을 위한 여야 협치가 닻을 올렸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경제부시장 제의를 홍의락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수락했다. 지자체장이 다른 당 인사를 주요한 자리에 임명한 사례는 대구·경북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선례가 없진 않다. 제주도의 경우 원희룡 제주지사가 2018년 8월 친여 성향인 고희범 전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과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을 각각 제주와 서귀포 행정시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이번 ‘대구 협치’는 보수 텃밭에서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부시장직을 여당 인사에 맡겼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그만큼 대구의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대구는 현재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 지난 4·15총선에서 대구지역 현역이던 김부겸 의원과 홍 의원이 낙선하는 바람에 정부·여당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져 국비 확보 등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그럼에도 이른바 ‘대구 협치’에 대해 ‘적과의 동침’이니 ‘트로이 목마’이니 ‘들러리’라는 비판이 여야 모두에서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열린 자세로 협치를 잘 살리는 데 힘을 모으길 당부한다. 권 시장은 협치에 대해 “변화는 (대구의) 절박함에서 나오고 협치는 낡은 격식과 셈법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홍 전 의원은 “저를 내려놓으려 한다. 권 시장의 제의를 받아들이겠다. 저로 인해 시민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권 시장이나 홍 전 의원 두 사람 모두 처한 정치적 입장과 이해를 떠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내린 결단으로 봄 직하다. 이번 협치 성사는 경쟁 정당의 인물을 부시장으로 임명한 혁신적인 인사를 통해 대구의 정치적 역량과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사실 대구 시민들은 위기 때마다 저력을 보여왔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 4·19혁명의 전신 격인 2·28 학생운동이 일어난 곳도 바로 대구다. 이번 선도적인 협치의 물줄기가 고사 위기에 놓인 대구 경제를 살리는 단비로 이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극한 대결로만 치닫는 국회에도 대구발 협치가 꼬인 정국을 푸는 자극제가 되길 기대한다.

박태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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