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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기자칼럼]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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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5년 전 시승차로 혼다의 어코드를 몰아봤다. 기대 이상이었다. 3.5ℓ 엔진의 힘이 넉넉했고, 곡선주로에서 몰아쳐도 딱히 차체 쏠림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앞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E 클래스 중 최상급 모델을 타본 뒤인데도 오히려 어코드에 감탄했다. 솔직히 차값이 그렇게 차이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국산차 경쟁모델보다 어코드는 확실히 한 수 위였다. 그 뒤 국산차가 어코드 범퍼에 닿을 만큼 바싹 따라붙었다.

경향신문

전병역 산업부


도요타의 렉서스는 한때 인기를 끌어 ‘강남 쏘나타’로 불렸다. 2000년대 중반쯤이다. 차를 좀 안다는 사람은 이제 일본차에 열광하지 않는다. 한국닛산은 16년 만에 아예 철수한다. 아사히 아니라도 국산은 물론 동남아 맥주까지 선택지는 많다. 전혀 유니크(unique)하지 않은 유니클로 또한 마찬가지다. 세상은 넓고 대체재는 널렸다. 단지 반일감정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 소비를 하는 셈이다.

지난해 7월 일본의 ‘느닷없는’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일제 불매운동의 파고가 1년째인데도 여전히 높다. 사태 초반 “한국인의 불매는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던 일본 측 예고는 값진 불쏘시개였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크게 오판했다. 조선 왕(선조)이 순순히 항복한 뒤 바로 중국 명나라로 들어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선조는 ‘도망’을 가버렸다. 더 충격적인 건 의병 궐기다. 무사 아닌 선비나 일반 백성이 낫, 죽창을 들고 일어서는 것은 순응적인 일본 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작금의 불매운동은 제2의 의병 궐기 같다.

혹자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한국의 3배나 된다며 우습게 봐선 안 된다고 한다. 다만 인구수를 감안해 평가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가와 환율을 반영한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인당 GDP에서 한국은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사상 처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 한국은 4만1001달러, 일본은 4만827달러로 집계했다. 2018년 잠정치는 격차가 634달러로 더 벌어질 것으로 추산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도 2023년 일본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의 명저 <국화와 칼>은 일본의 수치(羞恥) 문화를 설파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일본 사회에서는 모욕이다. 청와대 인사가 한국의 G7 확대 가입에 반대한다는 일본을 향해 “몰염치의 극치”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일본은 왜 저렇게 나올까. 베네딕트의 잣대로 보자면 한국을 ‘의리를 모르는 자’로 여기기 때문일 수 있다. 즉 한국을 근대화시킨 은인인 일본의 은혜를 모른다는 식이다. 그러나 일부 친일극우주의자를 제외하면 씨알도 안 먹힐 얘기다.

오늘날 일본이 처한 위기는 역사에 대한 몰인식 탓이란 해석도 나온다. <대변동>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시각도 비슷하다. 결국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참회와 사죄를 한 뒤에나 한국, 중국 등과 공동번영의 길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북아 갈등과 위기를 타개할 비책이다. ‘그 누구’의 정신적 지주라는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 같은 미몽에선 얼른 깨어나길 빈다.

전병역 산업부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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