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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책벌레 임금님'이 유행시킨 병풍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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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서가의 풍경'展

조선일보

책거리·문자도 8폭 병풍 중 ‘효(孝)’와 ‘제(悌)’ 부분. 위는 문자도, 아래는 책거리를 조합한 형식이다. 각 106×32㎝. /호림박물관


조선 제22대 왕 정조(1752~1800)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1791년 그는 창덕궁 어좌 뒤에 있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치우고 책거리 병풍을 세우라고 명한다. "옛말에 서재에 들어가 책을 만지기만 해도 기쁜 마음이 솟는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책거리 그림을 보고 알게 되었다."

왕이 좋아한 책거리는 곧 시중에 대유행했다. 고관대작이 앞다퉈 병풍을 집에 들였고, 19세기 후반에는 민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상류층은 책거리에 중국 도자기 등을 진열해 골동 취미를 드러냈고, 서민들은 책거리 민화를 통해 출세와 행복을 빌었다.

호림박물관 신사 분관 '서가(書架)의 풍경-책거리·문자도' 특별전에 나온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책가도 10폭 병풍'은 정조의 어좌 뒤에 설치했던 병풍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 나온 다른 책거리 병풍이 책과 도자기, 문방구 등 각종 기물을 함께 그린 반면, 이 그림은 서가 안에 오직 책만 빼곡히 차 있다.

민화의 대표 소재인 책거리와 문자도 30여점이 나왔다. 두 번째 전시실을 채운 문자도는 유교 덕목의 가르침을 풀어낸 그림.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자와 그에 얽힌 고사를 상징물로 표현했다. '효(孝)' 자에는 잉어·죽순·부채 등이 등장하는데, 병에 걸린 계모를 위해 한겨울 얼음 연못에서 구해온 잉어, 어머니께 드릴 죽순을 구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니 솟아났다는 대나무, 부모의 베개를 시원하게 하려 부치던 부채 등의 고사가 담겨 있다. '충(忠)'에는 충정의 새우, 단단한 껍데기처럼 변치 않는 조개, 절개의 상징 대나무가 단골로 등장한다. 문자와 상징물의 조합, 자획을 꾸며내는 무늬와 색감이 현대 그래픽 디자인 못지않다.

서지민 박물관 학예연구과장은 "민화는 사람들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는 가장 한국적이고 대중적인 그림"이라며 "책거리와 문자도는 학문, 출세, 유교 문화 등의 상징을 공통분모로 하는 장르"라고 했다. 7월 31일까지. 박물관은 이후 화조화, 산수·인물화의 민화를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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