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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맞아도 되고 죽어도 되는 아이는 없다[서초동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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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배성준 부장] [편집자주] 많은 사건들이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모여 듭니다. 365일, 법조타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체온인 36.5도의 온기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예로부터 우리는 회초리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고사가 있을 만큼 자식에 대한 훈육에 회초리가 빠지지 않았다. 가르칠 교(敎) 가르칠 효(斅)를 봐도 그렇다. 모두 두드린다는 의미의 복(攵,攴)이 들어있다. 이 글자들은 곤봉을 든 모습을 글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훈육을 위한 곤봉을 이제는 내려놔야 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구글에는 “아빠가 나를 때려요”라는 검색어가 유독 크게 늘었다고 한다. 힘없고 약한 아이들이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코로나에 휩싸인 2020년 우리 사회도 분노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잇따라 터져 나온 아동 학대 뉴스는 ‘어떻게 자녀를 이렇게까지 학대할까’ 기사를 끝까지 읽기 힘들 정도다.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로 매 맞고, 쇠사슬에 묶이고, 여행 가방에 갇혀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른들이 K방역을 이야기하고 재난소득을 운운하며 복지국가를 부르짖는 사이 학대를 받은 아이는 고통 속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회적 약자 특히 아동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사회를 건강한 복지국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사회안전망의 빈틈과 제도의 결함 속에 ‘사회적 죽음’의 아픈 기록이 너무도 많았다. 2013년 울산에서는 계모가 7세 의붓딸이 친구들과 소풍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갈비뼈 16개를 부러트려 숨지게 했으며 같은 해 칠곡에서는 계모 임모씨가 의붓딸인 8세, 12세 자매에게 물고문을 하고 밥을 굶기고 대신 청양고추를 먹이다 결국 동생이 사망했다. 이뿐인가, ‘부천 7세 초등생 토막시신 사건’, ‘경기도 광주 5세 암매장 사건’, ‘원영이 암매장 사건’ 등 하나 같이 부모의 학대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175명의 어린 생명이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지난 6년간 12.5일마다 한 명꼴로 학대에 의한 아동 사망자가 발생한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면 늘 크게 놀라고 불같이 화를 냈으며 곧 잊었다.

아동 학대에 관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통계는 더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4만여 건의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으며 실제 학대가 확인된 사례만도 3만70건으로 2015년에 비해 약 2.6배나 늘었다. 학대 사건 가운데 2012년 12월 인천의 한 마트에서 부모로부터 감금과 폭행을 당하던 11살 소녀가 맨발로 빵을 훔치다 붙잡힌 일이 있었다. 이후 전국의 장기결석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의 계기가 됐지만 어린 생명의 희생으로 아동보호 시스템이 진전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학대 아동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번에도 우리는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손가락을 지지는 학대를 당한 아이, 여행 가방에 갇혀 숨도 못 쉬는 상태에서 헤어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까지 맞다 숨을 거둔 9세 초등학생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사후약방문처럼 아동의 체벌에 관한 뒷북 법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행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하거나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징계는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정도로 해석되면서 오용과 오인을 낳고 있는데 특히 이를 징계권으로 보고 자녀 체벌권이 허용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이 점을 손보기로 한 것이다.

민법 개정을 준비해온 법제개선위원회는 민법상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 훈육으로 대체하는 것과 아동에 대한 부모의 체벌 금지를 민법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친권자의 징계 관련 문구를 수정하고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시안을 이달 안에 마련해 최대한 신속히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세상에 얻어맞아도 되고, 죽임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힘없는 아동은 말할 것도 없다. 더는 공분(公憤)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고 힘을 더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 모두가 높아진 감수성으로 학대 받는 주변의 아동들을 살피고 보호할 때 비로소 그동안 세상을 떠난 어린 영혼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이 될 것이다.

머니투데이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배성준 부장 spab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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