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지역을 늘리고 전세 대출 등을 제한한 ‘6·17 대책’이 발표됐지만,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집값이 쉽사리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동성 장세’인 상황에서 주택 공급은 제한적이고, 불안 심리로 매수에 나서는 실수요자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집값 상승세를 멈출 수 있는 요인으로는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경기침체와 부동산세 강화 등이 꼽혔다.
◇서울 집값 더 오른다… "6억원 이하 아파트 강세"
2일 조선비즈가 7명의 부동산 전문가에게 하반기 집값 전망을 물어본 결과를 보면, 상당수는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가격이 하반기에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6·17대책으로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와 법인 명의 매수 등이 줄며 일부 투자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내 집 마련에 나선 무주택 실수요자의 매수세가 강한 상황이다.
특히 시세 6억원 아래 중저가 아파트 시장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몰리면서 가격이 오르고 매물이 줄어든 여파로 서울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많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하반기 서울의 고가 주택과 재건축 추진 아파트는 규제의 영향을 받아 횡보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저가 주택 시장으로 유동성이 몰리면서 이 시장은 강보합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올해 상반기 시세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이 강세를 보였다면, 하반기에는 6억원 이하 아파트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가격 상승세가 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6·17대책 발표 이후에도 6억원 안팎의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지역에서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규제에 내성이 생긴 데다, 실수요자 사이에서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커진 것도 집값 강세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서울 수도권에 사는 30·40 실수요의 막차 올라타기가 주택 시장을 자극할 것"이란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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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2차 확산 가능성…법인 발(發)급매물도 변수"
물론 가격 상승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에 따른 국내 및 세계 경제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주택시장에도 충격파가 생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올해 상반기 주택 시장에 코로나 사태가 영향을 미쳤는데 특정 지역과 일부 아파트의 집값 상승이 부각되면서 마치 코로나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약해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었다고 본다"면서 "올 하반기 코로나 2차 대유행 위기가 올 경우 가격이 조정될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했다.
부동산법인에 대한 규제 영향으로 법인 발(發)매물이 시장에 나올 지도 주목된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법인에 대한 세제 강화 정책이 확정될 경우 법인이 보유한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법인이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면 집값이 내리지 않겠지만, 매물을 내놓는다면 이번에 규제지역에 포함된 수도권 서남권 지역 집값이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서는 개인이 절세 용도로 부동산 법인을 세워 주택을 사들이는 현상이 있었다. 법인이 강화된 규제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주택을 매물로 내놓으면 법인 매입이 단기에 늘면서 가격이 급등했던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격이 내리고 거래 열기가 식는 등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방 광역시·개발 호재 지역 국지적 상승"
지방 부동산 시장은 지역마다 엇갈린 가격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대부분 전문가가 광역시와 개발 호재가 있는 비규제지역 위주로 가격이 오를 것으로 봤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 연구원은 "상반기와 비슷하게 지역에 따라 국지적으로 오르는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서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 등 앞서 주택시장이 위축됐던 지방 중 인기 지역 위주로 가격이 오를 수 있으나 급등 양상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역 경기 침체, 거주인구 등 수요 정체 및 감소 추세에 따라 가격이 보합·하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방은 수요가 정체돼있다는 점이 가격 하락 요인이기 때문에, 개발 호재가 있고 인프라가 확충된 인기 지역만 오르는 현상을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방의 경우 수도권에서 넘어가는 수요의 영향으로 세종,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 움직임이 있고, 나머지는 보합을 보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서울·수도권 전·월세 시장 불안…규제 일변도 대책의 역설"
전·월세 시장 불안이 점점 커질 수 있다는 우려는 공통적이었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이미 주간 단위로 서울 및 수도권 전셋값이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면서 "청약 및 3기 신도시 분양 기회를 노리는 대기수요가 늘어난 데다, 내년 임대차보호 3법 시행에 앞서 미리 전셋값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전세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를 보증부월세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전세 수요는 늘어난 반면 올해보다 내년 입주량은 줄어들 상황"이라면서 "전세가격이 오름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경제학 이론상 실물경제 흐름이 안 좋고 실업자 수가 증가하고 중산층 붕괴로 이어지면 부동산 가격도 오를 수 없다"면서 "국내 부동산 경기 변동 사이클을 고려하면 사실 집값이 꺾이는 시점이 되어야 하지만, 정부의 땜질식 대책이 오히려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서울에는 주택 공급을 늘릴 계획이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주는 격이 돼 시장의 불안 심리가 커지고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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