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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의원님들, 치고받는 ‘000방지법’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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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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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 후보자를 처벌하고 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는 ‘윤석열 방지법’을 제출하겠다.”(지난해 7월 10일 오신환 당시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감찰부를 패싱한 것은 감찰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법안으로 내로남불식 관행이 개선되길 바란다.”(6월 26일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불과 1년 만에 ‘윤석열 방지법’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법안이 두 번이나 등장했다. 타깃은 윤석열 총장으로 같다. 하지만 던진 주체는 달랐다. 1년 전 법안은 지난해 윤 총장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야당인 바른미래당에서 냈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다. 최근 법안은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검찰청법ㆍ형법ㆍ형사소송법 개정안이다. 3개 법안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윤 총장을 겨냥했다.

김 의원과 최근 조수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추미애 방지법’은 김 의원과 같이 검찰과 윤 총장을 대상으로 한 법안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검찰청법을 개정해 개별 사안 수사에 대한 법무장관의 지휘권을 폐지하겠다는 게 골자다. 한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을 대검 감찰부가 직접 조사하라고 윤 총장에게 지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의식한 법안이다.

최근 들어 원내 정당들이 정략적인 차원에서 ‘000(특정인사) 방지법’ 이라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순수하게 입법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정치적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상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이유에서다.

입법은 뒷전...오직 상대를 겨냥한 정략적 목적의 '000방지법'


21대 국회에서 ‘000방지법’을 주로 쏟아내건 야당인 통합당이다. 가장 많은 건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기부금 유용 의혹 등을 저격한 ‘윤미향 방지법’이다. 사업 평가 결과를 정부에 알리도록 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안, 국고보조금과 기부금 관리를 강화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만 10개에 이른다.

통합당이 내놓은 ‘000방지법’으로 장관 출신 의원의 해당 상임위원장 선출을 막는 ‘도종환ㆍ이개호 방지법’(국회법 개정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부과된 추징금을 내지 않으면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한명숙 방지법’(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이 있다. 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사퇴한 지자체장이 선거 당시 보전받은 기탁금과 선거비용을 반환하게 하는 ‘오거돈 방지법’(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저격 법안을 ‘원내 투쟁’ 수단으로 과도하게 이용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조차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통합당 전직 의원은 2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입법 자체가 능사가 아니다. 좀 신중해야 하고 법안의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국회의사당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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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도 야당시절 흔하게 이용하던 대여 투쟁 전략


민주당도 대여 투쟁 차원에서 야당 시절 ‘000방지법’ 카드를 종종 꺼내들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던 2017년 2월 당시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현직 국무총리가 아닌 총리 후보자도 국무위원 후보자를 제청할 수 있게 하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차기 정권에서 국무위원 후보자를 제청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이른바 ‘황교안 개입 방지법’으로 불렸다.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 이름은 2013년에도 등장했다. 당시 민주당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황 전 대표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변호사 시절 수임 사건 내역 자료를 제출하지 않자, 이후 변호사법을 개정해 고위 공직자 출신 변호사가 최초 2년간 수임한 사건 내역을 법조윤리협의회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는 '황교안 방지법'을 추진했다. 민주당은 2015년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때도 수임 자료 공개가 문제가 되자 ‘황교안 방지법’에 처벌 조항을 추가하는 ‘제2 황교안 방지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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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당 의원들과 더불어민주당 규탄 발언 중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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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과정 희화화" "법률대신 정치로 풀어야"


전문가들은 원내 정당들의 ‘000방지법’ 남발에 대해 입법 효율성을 낮추고 법률에 대한 신뢰성을 낮춘다고 지적한다. 직전 20대 국회에서도 의원 발의된 법안 2만 1,594건 중 가결되거나 대안으로 반영된 법안이 6,608건에 불과할 정도로 발의 대비 입법 비율은 50%도 안됐는데 이를 더욱 부추기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당장 사람들에게 이슈를 부각하려는 법안을 남발하는 건 입법과정을 희화화한다”고 비판했다. 비단 입법 과정에서의 문제 뿐 아니라 정쟁을 부추기고 사회 통합을 해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법률이 파당의 수단, 정파적 전쟁의 도구가 되면 온전한 피해는 사회에 온다"면서 “의원들은 법률이 아니고 정치를 통해서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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