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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중소기업들은 왜 가족경영을 할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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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야사-44] 우리가 세상을 떠나 자녀에게 내 재산을 물려준다고 하면 상속세라는 것을 내게 됩니다. 만약 살아 있는 동안 자녀에게 재산을 주면 증여세라는 것을 냅니다. 기본적으로 상속세와 증여세는 같은 세율을 적용받습니다. 요즘 부동산이 뜨거워지면서 이 증여세와 상속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요. 우리가 자식에게 세금을 물지 않고 물려줄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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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머리가 커서 무거운 왕관도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사진 제공=SBS 상속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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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에서는 19세 이하 미성년자는 10년간 2000만원, 19세 이상은 10년간 5000만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20세가 될 때까지 4000만원을 증여해주고 30세까지 5000만원, 40세까지 또 5000만원을 세금 없이 줄 수 있습니다. 매 10년을 맞춰서 증여를 한다면 자녀가 31세가 됐을 때 세금 없이 줄 수 있는 돈은 1억4000만원입니다.

1억4000만원 이상 증여에 대해서는 1억원까지는 증여 금액의 10% 5억원까지는 20%, 10억원까지는 30%, 30억원까지는 40% 30억원 이상부터는 50%로 세율이 올라갑니다. 만약 100억원을 상속·증여한다면 4억6000만원+70억원에 대한 50%인 총 39억6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입니다. 상속세율이 40%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물려주는 것이 기업 경영권이라면 세율이 더 높아집니다.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하게 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는 할증평가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업가치에 20%를 할증해 50% 세율이 부과됩니다. 이렇게 되면 30억원 초과 금액의 실제 세율은 60% 정도라고 합니다. 물려주는 기업가치가 100억원이라면 50억원 정도는 세금으로 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업가치가 1000억원 혹은 1조원이라면 실제 내야 하는 금액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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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를 보면서 고민하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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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속세는 중소기업을 물려주게 될 경우 많은 문제가 됩니다. 상장기업이라면 높은 세율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보유한 주식을 팔아서 세금을 내면 됩니다. 대주주 지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겠지만 연부연납제도를 통해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나눠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내기 부담스러워 회사를 매각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콘돔으로 유명한 유니더스(현 경남바이오파마), 종자회사 농우바이오(농협이 인수) 같은 회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비상장인 경우가 많아서 쉽게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비상장 기업 주식을 사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금 대신 비상장 주식을 정부에 물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상속세를 낼 다른 재산이 전혀 없어야만 가능합니다. 기업을 상속받기 위해 다른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다른 재산을 모두 팔아야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창업자가 돈을 버는 족족 회사에 투자했다면 재산 대부분이 회사 주식이고 자식에게 물려줄 현금이나 부동산이 없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게 됐을 때 상속자들은 상속세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때 상속자들은 회사를 통째로 매각해버리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회사가 돈을 벌지 못하고 경영 상태가 나쁘다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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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우리는 일본 오카모토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뻔했습니다. /사진 제공=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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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나오면서 중소기업 2세가 가업을 승계해 회사를 운영하면 세금을 크게 깎아주는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장 회사 문을 닫게 하는 것보다 2세가 이를 물려받아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일자리 유지 측면에서 낫다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2008년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됐는데, 그 전에는 가업상속 공제가 1억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의 꾸준한 요청으로 공제한도액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현재는 30년 이상 된 기업은 500억원이나 공제가 됩니다. 500억원 가치의 기업까지는 물려받을 때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은 앞서 말씀드린 할증평가제도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250억원 정도 세금을 내지 않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이 같은 혜택은 엄격한 조건을 지켜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매출 3000억원 이하 기업이어야 합니다. 또한 회사를 물려받으면 직접 경영을 해야 하고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는지, 고용을 유지하는지, 업종을 바꾸지는 않는지와 같은 감시를 7년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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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승계기업의 56%는 제조업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는 특례를 줘야 그나마 가업을 승계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진 제공=중소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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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가 살아 있는 동안 증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해온 60세 이상 창업자라면 가업승계 주식 증여세 과세특례를 받는 것이 가능한데, 100억원을 한도로 10% 세율로 과세합니다. 과세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20% 세율로 과세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30억원 가치의 기업 주식은 자녀에게 가업승계 목적으로 증여한다면 세금을 3억원만 내면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제도가 없었다면 증여세로 4억6000만원을 내야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7년 동안 감시를 받아야 합니다.

앞서 (상)편에서 중소기업들이 비판받는 것은 '가족경영' 때문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가족경영이란 다음 세대에게 기업을 승계시키는 것을 말한다고 저는 정의했습니다. 기존 회사에서 일하던 직원 입장에서는 창업자의 자녀가 단지 '피붙이'라는 이유로 회사 지분을 물려받는 것을 넘어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되는 것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회사에 근무해온 직원들이라면 내부 경쟁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고 그동안 회사에 기여해온 것이 있습니다. 반면 창업2세는 아무것도 검증받은 것이 없고 기여한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장급 정도로 시작해 조금씩 진급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경영자가 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소기업이 아니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거나 대기업이라면 2세가 물려받게 되는 부와 권력의 크기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상)편에서 말씀드렸던 2세들이 물려받기를 기피하는 중소기업과는 완전히 상황이 다릅니다. 체계가 갖춰져 있는 기업일수록 내부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2세는 창업 세대에 비하면 훨씬 쉽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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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왕으로 즉위한 것은 1418년(21세)이고 아버지 태종이 세상을 떠난 것은 1422년입니다. 세종대왕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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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족기업과 우리나라 가족문화를 봤을 때, 2세가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표이사에 임명됐을 때부터 진짜 검증이 시작됩니다. 지분이 완전히 자신에게 넘어오거나 부모가 완전히 경영에서 은퇴(혹은 별세)해야만 2세의 독립적인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계속 부모에게 검증을 받고 부모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왕으로 등극하더라도 선왕이 살아 있으면 '상왕'으로 왕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째서일까요? 가족기업은 '가족'으로서 인간적인 관계와 '기업'으로서 비즈니스 관계가 중첩돼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족기업은 항상 '가족적'인 문제에 노출돼 있습니다. 단지 몇 년 후가 아닌 가족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점에서 가족기업은 장기투자에서 큰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 예를 들자면 부모자식 간 불화, 상속을 둘러싼 자녀 간 갈등, 배우자와의 이혼 등이 발생하곤 합니다. 이는 기업 크기와는 무관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족문화가 바뀌면서 우리나라 가족기업 문화도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34곳 중 26곳이 가족경영 기업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가 1945년 시작해 7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가족기업의 2세, 3세 경영자나 1990년대 이후 창업한 기업가들은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회사를 물려받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실효세율 기준으로 최고 60%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회사 지분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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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말 기준 30대 재벌 중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2곳이 망했습니다. 이 중 3세 경영으로 넘어간 곳은 6곳이고 창업 1세가 남아 있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 제공=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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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소기업 가업승계와 달리 대기업집단의 가업승계는 사실 우리나라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인이 있는 기업과 주인이 없는 기업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단순히 '부'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본다면 상속세를 거둬야겠지만 기업이 '부'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생각한다면 상속세를 낮추거나 상속자들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업을 '징세'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이덕주 벤처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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