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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임주희 ‘임주희’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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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천재 피아니스트 첫 리사이틀

[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 6월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경기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앞두고 리허설하고 있다. MOC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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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외에 제도 교육 안 거쳐
열 살에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협연

러 피아니스트 마추예프 요청에
카롤 베파가 작곡한 토카타 초연
어린 연주자에 감명받은 작곡가
‘임주희’ 이름 붙인 에튀드도 써
이번 리사이틀 첫 연주곡으로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2000년생 용띠다. 이제 갓 성년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불고기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우더니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말아 비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천진하고 씩씩했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피아노 치려면 힘이 있어야 해요!”라고 했다.

스무 살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첫 리사이틀을 마련한다. 3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이어서 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연주한다. ‘첫 리사이틀’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피아니스트다.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고작 열 살이던 2010년 러시아 ‘백야 페스티벌’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67)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였다. 이듬해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에서 연주했고, 2012년에는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내한한 게르기예프와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는 열일곱 차례나 연주했다.

임주희의 경력은 이렇듯 거장들과의 협연이 거의 전부다. 젊은 연주자들이 대부분 거쳐가는 제도 교육을 아예 받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후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집에서 책을 읽었다. 피아노 스승은 신수정 전 서울대 교수(78)와 강충모 전 줄리아드음대 교수(60)다. 임주희는 오는 9월 줄리아드음대로 진학하는데, 이것이 초등학교 이후 첫번째 학교 교육이다.

“부모님이 피아노학원 하시거든요. 아기 때부터 피아노가 장난감이었어요. 제가 36개월 되자 엄마가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치열하게 레슨하진 않으신 것 같아요. 그냥 같이 놀았어요(웃음). 그래서 피아노 치는 시간이 항상 재밌었던 것 같아요.”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는 “몇몇 선생님들 앞에서 오디션을 치렀는데, 공통적으로 ‘학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털어놨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네 음악을 하라”는 조언이었다고 했다. ‘어떤 선생들이었냐’고 묻자, 피아니스트 존 오코너와 알렉산더 토라체, 그리고 지휘자 게르기예프 같은 이름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첫 경험”이었다. 말하자면 임주희의 협연 데뷔에는 ‘중간 과정’이 아예 없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음악계에서 어느 정도 존재감을 갖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애초에 게르기예프 측에서 요구한 레퍼토리는 러시아 작곡가 카발렙스키의 협주곡 3번. 두 달 전 연락을 받고 열심히 연습해 현지에 도착했는데, 백야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기로 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참가하지 못해 이른바 ‘대타’까지 임주희의 몫이 됐다.

“게르기예프가 ‘하이든 협주곡 D장조도 해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한번도 안 해본 곡이었거든요. 러시아 현지에서 도서관으로 달려가 악보 복사하고, 이틀 동안 죽어라 연습했어요. 그런데 첫번째 리허설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저는 분명히 악보의 템포대로 연주했는데, 오케스트라 반주가 너무 느린 거예요. 어, 뭐지? 내가 잘못한 건가…. 갑자기 마에스트로가 음악을 멈추고 껄껄 웃더니 저한테 잠깐 나가 있으라는 거예요. 그때 굉장히 당황했어요.”

알고 보니 게르기예프의 배려. 어린 임주희가 하이든 협주곡을 처음 하는 것이기에 오케스트라의 템포를 늦췄는데, 열 살 꼬마는 이미 충분히 곡을 연습해온 상황이었던 것이다. 임주희는 “다시 연습실로 불려가 무사히 리허설을 마쳤다”며 웃었다. 이 소문이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귀에 들어갔고, 임주희는 이듬해 앙시 페스티벌에서 ‘마추예프와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때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어요. 원래 베토벤 소나타를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마추예프가 ‘현대음악 작곡가 카롤 베파가 나한테 헌정한 토카타가 있는데, 네가 초연해보겠니?’ 하는 거예요. 저는 뭐 어리고 잘 몰랐으니까… 네네네 했어요. 그런데 그 곡이 마디마다 박자가 바뀌는, 아휴 정말 난곡이었어요. 하여튼 죽어라고 연습해서 연주했어요. 암보로 해냈죠. 나중에 마추예프와 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주희, 너는 내 라이벌이야!’ 그랬어요(크게 웃음).”

작곡가 베파는 이 연주를 들으면서 열 살이 갓 넘은 피아니스트에게 영감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가 작곡한 ‘6개 에튀드’에 ‘임주희’라는 제목의 곡이 있을 정도다. 임주희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바로 이 곡을 첫 순서로 연주한다. 이어지는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임주희는 “정명훈 선생님과 가장 많이 한 곡이 베토벤 협주곡이었다”면서 “‘발트슈타인’은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 가장 교향악적인 울림을 갖는다”고 했다. 이어지는 쇼팽의 발라드 1번과 소나타 3번에 대해서는 “열 살 되기 전부터 가장 사랑해온 작곡가가 쇼팽”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백발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지금도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잖아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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