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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오늘의시선] ‘무오류적 존재’ 착각 與의 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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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견 묵살하는 무한 질주 / 野 존재도 무시 땐 위기 부른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결과를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는 결과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국회를 보면 절차는 존재하지만 그 본래 의미는 사라져, 절차가 일종의 요식행위로 전락한 것 같아 걱정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등 16개 상임위는 지난달 29일부터 30일 오전까지 이틀에 걸쳐 전체회의를 열어 소관 부처별 3차 추경안을 의결해 예산결산특위로 넘겼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심사가 1~2시간 내에 마무리됐다고 한다. 이 ‘심사’ 과정에서 정부 원안보다 3조1311억원이 오히려 늘어났다. 3차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23조8000억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에게 상당 수준의 빚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는 사안을 ‘초스피드’로 심의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기획재정위 회의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심의가 아닌 통과 목적의 회의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

세계일보

신율 명지대 교수 정치외교학


여기서 필자는 추경안의 필요성을 부인하거나, 추경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여당의 ‘독주’에 관한 문제다. 지금 여당은, 관례를 무시하고 법사위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더니, 이에 대해 야당이 반발한다고, 1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는 안하무인 격 독주를 하고, 급기야 3차 추경안마저 ‘독자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런 여당의 ‘무한 질주’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포함한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당이 뭐라 하면 ‘발목잡기’라고 하고, 다른 전문 기관의 의견은 들은 체도 안 한다. 이번 3차 추경만 봐도 그렇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3차 추경안을 분석하며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이 상당수 편성돼 있다”며 국회의 깊이 있는 심사를 권고했지만, 여당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정부 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증액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지금 여당은 자신들이 ‘무오류적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무오류적 존재가 아니라면, 다른 말들을 듣고, 역지사지하고 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 여당은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하니까 하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여당은 지금은 위기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추경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울지 모른다. 물론 지금이 위기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위기일수록 자신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위기 상황에서 실수하면, 돈은 돈대로 날아가고, 나라는 나라대로 더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라는 이유를 들어서 지금처럼 졸속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그뿐 아니라, 야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여당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만일 야당을 발목 잡는 존재라고만 생각한다면, 야당이 존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야당은 여당에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존재이자, 여당의 무한 질주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야당은 귀중한 존재이고 여당이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야당이 귀찮기만 한 존재라고 치부하면,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로 변하게 된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국민들을 단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여당은 과연 그런 의지를 가졌는지 의구심이 든다. 야당을 배제하는 것은, 야당을 찍은 1185만명 정도의 유권자를 배제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3일 추경안을 처리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는 반면, 통합당은 11일까지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이런 야당의 ‘부탁’에도 민주당이 3일 추경을 처리한다면, 야당의 국회 복귀는 요원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무오류적 존재(?)’ 여당의 무한 질주는 계속될지 모른다. 민주당이 생각해야 할 점은, 신이 아닌 이상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실수도 하고 오류도 범한다는 점이다. 위기에서의 실수는 국가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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