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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사설] 언제까지 ‘한반도 평화 중재자’란 허상에 매달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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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달 30일 한·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북·미가 다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도록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중재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미국 측에 전달됐고, 미국 측도 공감하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 “남북,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집중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 생각과 달리 중재자론은 북·미 양쪽으로부터 외면받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지금과 미 대선 사이에는 아마도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에선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경협 확대 등 북측 요구에 무게를 두는 한국이 ‘공정한 중재자’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북한이 최근 대남 도발에 나선 것도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문재인정부의 중재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중재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설사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북한 비핵화가 빠진 ‘정치 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이번이 ‘톱다운 방식’ 북·미 협상의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모양이다. 지난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협상이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비핵화는 실종되고 한반도에 다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허상으로 밝혀진 중재자론을 접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안정적 관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여권 인사들의 경솔한 발언이 터져나오는 것도 우려스럽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 내용과 관련해 백악관을 ‘봉숭아학당’에 비유하며 “미국을 믿을 수 있는 나라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주한미군, 한·미동맹의 군사력이 오버캐퍼(과잉)”라는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언급은 주한미군 감축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한·미 간 불협화음을 키울 수 있는 언행을 자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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