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편집국에서]절실한 세 사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는 언제나 선(善)이다.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이들도 ‘그래서 해법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화와 협상 말고 내놓을 방도가 있는가. 북한 체제가 무너져야 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희망고문’을 하는 격이다. ‘네오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8년 동안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회고록에서 ‘북한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제약’이라며 ‘북한 체제 붕괴’와 ‘대북 군사 옵션’을 제시했다. 2005년 북핵 9·19 공동성명을 도출했던 부시 행정부는 막판에 ‘악의적 무시’로 북한을 냉대했지만 이 두 가지는 아예 목록에서 지웠다.

경향신문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6월 한반도에 회오리가 몰아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내세운 막말 퍼레이드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긴장 수위를 끌어올렸다. 남북화해의 상징이 무너지고 4·27 판문점선언은 껍데기만 남았다. 보수 측에선 북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적 사랑’, 아니 그건 너무 점잖은 표현이라며 ‘스토킹 수준’ 대북정책의 결과라고 성토했다. 북한의 의도가 미국도 겨냥한 것이라면 그 기대에 어긋났다. 북한이 ‘화났다’는 메시지는 전달했을지언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꾸하지 않고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북한에 실망했다.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라”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때로는 외교안보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남북관계와 북핵 협상의 역사가 그러했다. 서로 부딪쳐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는 후일을 도모하는 게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실 남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북한을 움직일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는 어쩔 수 없이 냉각기에 들어갈 거라고, 차라리 냉각기를 갖는 게 낫다는 진단과 조언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중단 없는 대화’ 입장에 섰다.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에 ‘종전을 위한 담대한 노력’을 주문한 데 이어 오는 11월 이전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미국에 요청했다. 미국 측과 사전에 어느 정도 얘기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유럽연합(EU) 지도부와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언급하고 이튿날 공개한 걸 보면 공론화를 작정한 셈이다. “남북관계 진전과 성과를 뒤로 돌릴 수 없다”는 대목에선 절박함도 느껴진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의 처지는 곤궁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고, 재선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던 경제 호황은 언제 반등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주요 경합주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밀리며 대선 전망도 어둡다. 여론조사 상황으로는 과거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과 유사한 흐름이라고 한다. 대선 판도를 뒤바꿀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할 판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을 것이다. 선진국들도 코로나19로 경제 악화에 직면했는데 북한은 말한들 뭐하겠는가. 중국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줄 거라고는 하지만 국경을 틀어막아놨으니 한계도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김 위원장이 당장 노동당 창건 75주년(10월10일)을 맞아 인민들에게 제시할 미래 비전도 마땅치 않다.

급하다는 이유가 만남과 합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조건이 맞아야 하고, 이익이 생겨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 기준은 대선에 미칠 정치적 득실일 텐데 역풍을 맞을 합의를 할 리 만무하다. 북한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 제재 해제가 담보되지 않으면 대화할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아직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고, 3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 외무성 국장이 “남조선이 조미(북·미) 대화 재개를 운운하는 것은 헛소리”라고 말한 터라, 문 대통령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북한이 올라앉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일단 북·미 대화 성사에 진력을 기울이더라도, 긴 호흡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넉 달 내 북·미 회담 성사 여부로 한반도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참에 대북정책을 점검하고, 외교안보 라인을 재정비해야 한다. 다음달 한·미연합군사훈련 등 한반도 위기 요인을 꼼꼼히 살펴 불똥이 튀지 않도록 세심한 대응도 요구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실패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질 경우, 조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1월 출범하고, 외교안보정책을 검토해 새 정책을 수립한 뒤 북한과 대화할 시기는 일러야 여름 무렵이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ahn@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