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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따뜻한 그늘]지난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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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판화(版화)와 사진은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네거티브(음화) 원판에서 포지티브(양화)로 바뀐다는 것이다. 판화도 원본을 만들기 위해서 반대 방향으로 새기는 작업을 한다. 또한 찍어낼 때마다 완전히 똑같은 작품을 생산해 낼 수는 없다. 사진의 프린트도 이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리고 에디션넘버라는 것이 있어서 무한정 찍어내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는 완전히 다르다. 판화는 말 그대로 파내야 의미가 생긴다. 나무나 돌에 정신을 집어넣기 위해서 파고 또 판다. 그래서 풍경이 생기고 인물이 들어선다.

지용출의 판화에서는 그가 굳이 판화를 해야만 했나 하는 이유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작업은 파서 들어낸 자국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가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판화 ‘4월’은 가슴으로 왈칵 다가서는 느티나무가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그 느티나무는 새순이 돋아나고 있을 것이다. 돌담으로 에워싼 옛집의 풍경을 거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도랑가에 솥을 걸어둔 채 민물 매운탕이라도 끓이고 있는 것인지, 그 옆에 두 사내가 앉아 있는데 밀짚모자를 쓴 사내가 지나가는 과객을 붙들고 술 한잔 권하고 있다. 그 잔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작가 자신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젊은 나이에 생을 하직한 그가 우리를 붙들고 술 한잔 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순이 돋아나는 ‘4월’을 기억하면 어떻겠냐고.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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