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집에서 家具가 줄어든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중산층 아파트는 왜 방 세 개에 화장실 한 개일까? 1970년대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옮기면서 한 집에 부모·자식 2대만 사는 ‘핵가족’의 시대가 열렸다. 동시에 실행된 인구 정책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갑작스레 집이 많이 필요하자 고층 주거인 아파트가 생겨났다. 아이는 두 명을 낳으니 두 자녀가 방 하나씩 쓰고 부부가 한 방을 사용하면 방이 3개가 필요했다. 매일 샤워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 잡으면서 화장실에 샤워 시설이 설치되었다. 이렇게 방 3개 화장실 하나의 중산층 주거 평면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지나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아침에 두 명이 동시에 샤워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며 화장실 2개가 기본형이 되었다.

침대와 소파로 좁아진 집

예전에는 방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걷어서 장롱에 넣고 그 자리에 밥상을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같은 자리가 시간에 따라 잠자리로 쓰이다가 밥 먹는 자리가 되었다. 한 공간이 다용도로 쓰였다. 여권(女權)이 신장하면서 가사 노동을 줄이는 쪽으로 문화가 발전했다. 세탁기가 상용화하였고 이부자리를 깔고 치우는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 '침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침대는 공간적으로 하루 8시간만 사용하지만 자리는 24시간 차지하는 장치다. 침대는 공간을 낭비하는 '공간적 사치'다. 평당 2천만원짜리 집에 산다면 침대 하나당 4천만원을 쓰는 셈이다. 서양에서 침대를 사용한 이유는 난방 시스템이 '온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돌 난방을 하는 우리는 가장 따뜻한 곳이 방바닥이다. 추운 겨울에 이불을 깔고 방바닥에 가깝게 잠을 자야 한다. 온돌이 없는 서양의 경우에는 반대로 바닥은 춥고 위로 올라갈수록 따뜻하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닥에서 올라간 높은 침대를 써야 했다. 과거 침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서양의 침대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방이 좁아졌다. 거실에는 4인 가족이 모여서 TV를 볼 '소파'도 생겼다. 소파 역시 자리를 차지하는 가구다. 침대와 소파로 좁아진 집을 해결한 편법이 '발코니 확장법'이다. 이미 지어진 집을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으니 발코니를 실내 공간으로 전용(轉用)하는 방법을 택했다.

앞으로 주거 공간은 가변형이 될 것

조선일보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 많은 일을 집이 감당하게 되었다. 더 많은 일을 집에서 하려면 더 큰 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장 재건축을 할 수도 없고, 더 비싼 큰 집으로 이사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먼 외곽으로 나가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향후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 같다. 첫째는 재택근무를 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들어도 되는 날에는 지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라이프 스타일로 바뀔 수 있다. 일주일에 4일 정도는 도시 속 비좁은 집에서 보내고, 3일 정도는 지방에서 보내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방 균형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는 균형 발전을 위해 주민등록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대신 그 사람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내며 돈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방법은 가구를 줄이는 것이다. 인기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 '화사'는 예전 거실에 소파 대신 안방 침대를 옮겨놓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실은 면적도 제일 크고 창문도 바닥까지 내려와 방보다 밝아서 살기에 더 좋기 때문이다. 이미 사용자에 의해서 평면은 해체와 변형이 시작되었다. 4인 가족이 모여 앉아서 TV를 보는 것이 소파의 주요 기능이었는데, 요즘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스마트폰이나 랩톱으로 본다. 굳이 소파에 있을 이유가 없다. 거실에 소파를 치우고 큰 테이블을 놓고 음식을 준비할 때는 부엌 가구처럼 사용하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오피스 책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더 좁은 원룸의 경우에는 침대를 접어서 사라지게 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향후 주거 공간의 많은 부분이 가변형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변화에 적응 가능한 기둥식 구조

새로운 주거 평면에서는 부엌이 창가로 가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부엌은 북쪽에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예전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햇볕이 안 드는 북측에 부엌을 놓았다. 부엌일을 전담했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평면상 가장 안 좋은 위치에 부엌을 배치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가족 구성원이 부엌에서 일하고 예전보다 음식을 할 때 나는 냄새에 민감해졌다. 잘살수록 사람은 냄새에 민감해진다. 1980년대 들어 매일 샤워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남자도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음식을 준비할 때 냄새가 집 안에 퍼지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원룸을 디자인할 때도 부엌을 복도 쪽이 아닌 환기가 잘되는 창가 쪽에 배치한다. 시대에 따라 평면의 요구는 달라진다. 계속해서 바뀔 평면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주거를 기둥식 구조로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기둥식 구조는 재건축 없이도 변화에 적응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인 기둥식 구조를 주거에서 활성화할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