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2 (일)

[만물상] 對美 로비 자금 세계 1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의 대미(對美) 로비는 ‘코리아게이트’라는 흑역사로 출발한다. 1970년대 주한미군 감축, 인권 문제 등으로 미국과 마찰을 빚던 우리 정부는 한 재미 실업가를 통해 미 의회 내 우군 확보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엄격한 규제를 받는 미 로비 시스템을 무시하고 ‘한국식’으로 돈부터 뿌리다 망신을 당했다. 당시 미 언론에선 ‘세련되지 못한 공작의 표본 같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국내에선 ‘로비스트=불법 브로커’ ‘로비=뇌물·향응’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국내의 음침한 이미지와 달리 미국에서 로비는 수정헌법 '청원권'에 근거를 둔 합법 비즈니스다. 기업·단체는 물론 외국 정부도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해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는 통로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다만 고객과 보수,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K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워싱턴 로비 시장에는 2500개 회사에 2만여명의 로비스트가 등록돼 있고, 이들은 매년 30억달러를 쓴다고 한다. 거물급들은 연방 의원을 직접 불러내 식사를 함께 한다. 미국 내 인맥이 취약한 외국 정부나 기업이 이들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바보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대미 로비를 위해 로비스트를 직접 고용한 것은 2005년부터다. 주미대사관은 한·미 사정에 모두 밝은 한국계 홍보회사나 로펌을 주로 썼다. 미국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선 700만달러 넘는 로비금이 투입됐다. 위안부 결의안 채택,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군사장비구매(FMS) 지위 격상 등 대미 외교 성과에도 로비는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

▶한국이 최근 4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미 로비 자금을 썼다고 한다. 미 시민단체가 공식 신고된 금액을 집계했더니 한국은 1억6500만달러로 일본·이스라엘·중국보다 많았다. 특히 한·미 모두 새 정권이 들어선 2017년에는 전년보다 10배 폭증했다. 당시는 트럼프의 예상 밖 당선으로 K스트리트가 유례없는 특수를 맞았을 때다. 싱크탱크나 학술재단 등을 통한 '비공식' 금액을 합치면 일본·이스라엘 로비 자금이 우리를 한참 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로비 지출이 많은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안보·경제 사활이 걸린 대미 관계를 위한 투자라면 얼마든지 써야 한다. 한국에 유리한 정책 하나면 그 몇 배, 몇십 배 이익으로 돌아온다. 다만 국익이 아니라 정권의 어젠다를 위해 쓰이거나 전략 없이 ‘헛돈’이 들어간 경우는 없는지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임민혁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