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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좀비 아빠'지만 사실 겁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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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 각본가 맷 네일러

16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올해 극장가에서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는 드물게 '무사생환'에 성공한 작품이다. 지난달 24일 개봉 이후 8일 만에 124만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건, 코로나 바이러스 충격파가 본격적으로 닥친 지난 2월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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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이자 작가 맷 네일러〈위 사진〉가 시나리오 집필을 맡았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그동안 외국 영화의 리메이크는 적지 않았지만, 영화화 이전의 창작 대본을 구입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제작사인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3~4년 전 각본을 추천받고 읽었는데 재난으로 한정된 공간에 고립된 남녀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의 폭에 흥미를 느껴서 계약했다"고 말했다.

네일러는 미 브라운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인문학도' 출신. 그는 2일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의 오랜 팬이라고 말했다. 네일러는 "대학 시절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본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였다"면서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독특한 개성에 완전히 사로잡히고(obsessed) 말았다"고 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도 "그의 정교한 연출력에 감탄했다. 봉준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설국열차'"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 팬이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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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네일러가 시나리오를 쓴 '#살아있다'는 좀비들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청춘을 그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살아있다'는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들이 아파트 단지에 출몰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정작 네일러는 "실은 겁이 많아서(too chicken) 공포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6년 1100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부산행'에 대해서도 "호평을 많이 들어서 몇 번이나 작심하고 보려고 했는데, 그즈음 태어난 첫딸을 돌보느라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딸이 조금 더 크면 남은 분량을 반드시 마저 보고 싶다"고 했다.

네일러는 원작 대본과 '#살아있다'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도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당초 대본은 미국의 저층 맨션이 배경이었지만, 각색 과정에서 한국식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좀비가 쏟아지는 장면으로 수정했다. 각색은 조일형 감독이 맡았다. 네일러는 또 "남녀 주인공들의 관계가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점일 듯싶은데, 원래 시나리오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남녀 주인공이 로맨스에 빠지는 설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남녀 주인공을 맡은 배우 유아인과 박신혜의 러브 스토리를 볼 뻔했던 셈이다.

그는 대학 시절 연극과 문예 창작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의 꿈을 키웠다. "대학을 다니면서 영화 제작사에서 인턴 생활을 한 뒤 다큐멘터리 편집자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해 허구의 세계를 다룬 극 영화로 전환한 셈. 하지만 네일러는 "수백 시간에 걸쳐서 촬영을 거듭한 뒤 90분 안팎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길 바란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와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닮았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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