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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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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아키텍트-43] 라스베이거스의 휘황찬란한 간판과 네온사인에서 벤투리는 미국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 건축의 가능성을 찾으려 했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장식 헛간'(decorated shed)과 '오리'(duck)의 비유다. '오리'는 조각처럼 다듬은 하나의 형태다. 반면 '장식 헛간'은 실용적 건축에다 상업적 간판을 붙인 건축이다. '헛간'은 자동차도로의 시각적 풍부함에서 나온다. '오리'는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가 닮은꼴이므로 벤투리의 관점에서 '아이콘(icon)'이다. '헛간'은 기표와 기의가 관습과 문화로 연결된 것이므로 '상징(symbol)'이다. 벤투리에게 근대 건축은 상징성을 잃은 '오리'다. 벤투리가 그리는 도시와 건축은 근대건축의 엄격함을 탈피한 '기호의 건축'과 '기호의 도시'다.

미국 건축 현실에 대안을 제시한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라스베이거스의 상업 가로를 일종의 건축 전형과 사회적 현상으로 분석해 언론과 건축계의 수많은 갈채와 비평을 동시에 받았고, 그 이후 모더니즘의 논리에 갇혀 있던 건축이 틀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뻗어나가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서울에서도 수십 년간 목격됐지만 도시 경관의 인터페이스인 '욕망의 운반체'(vehicle of desire)인 자동차는 주요 건축물의 로비 등 주요 공간 내외부에서 상품으로 전시되는 대상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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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기념 미술관(Allen Memorial Art Museum. AMAM. 1976) /사진=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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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기념 미술관(Allen Memorial Art Museum. AMAM. 1976)은 오하이오주 오베를린 대학 내에 위치해있다. 1917년에 지어진 건물을 1973년 증축하면서 기존 구관의 건축 어휘를 존중했다. 구관 특성을 재해석하면서도 신관의 특성을 구분 짓기 위해 분홍색 화강암과 붉은색 사암을 사용해 바둑판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기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너무 눈에 띄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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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턴 대학 고든우 홀(gordon wu hall. 뉴저지. 1983)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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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프리스턴 대학 고든 우 홀(gordon wu hall. 1983)은 버틀러대 기숙사다. 파사드의 화강 무늬와 대리석 사용, 벽돌, 석재 인방 띠, 연창 등 고딕풍의 느낌이다. 벤투리 특유의 아치형 창문도 적용됐다. 대학 전체가 대리석과 회색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역사성과 지역성을 강조하는 벤투리 건축 문맥을 적용했다. 파사드에는 기본적 도형이 어우러져 거대한 성 모양을 하고 있다. 1층은 500여 명을 수용하는 식당과 홀이 있으며 2층은 휴게실, 관리실, 도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벤투리는 1984년 발간한 에세이 집 'A View from the Campidoglio:Selected Essays, 1953~1984'에서 알바알토(Alvar Aalto)의 작품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다. 알바 알토의 작품이 가장 크게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자신에게 가장 적절했으며 가장 풍부한 원천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됐다고 말했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대변하는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라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철학에 '단순한 것은 지루하다'(Less is bore)는 말로 화답했다. 의미의 명료성보다는 풍부함을, 양자택일적인 사고보다는 공존의 태도를 더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식과 상징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벤투리가 1970~1980년대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1991년에는 두 개의 미술관 프로젝트를 동시에 완성한다.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신관(Sainsbury Wing)과 시애틀 미술관(Seattle Art Muse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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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미술관(Seattle Art Museum. 1993)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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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미술관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다. 시애틀 중심가에 있는 5층 본관(Main Museum)을 벤투리팀이 설계했다. 미술관 입구에 1992년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대형 조각상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설치됐다.

벤투리는 시민이나 어린이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대중적이며 친근한 느낌의 미술관을 기본 설계 콘셉트로 잡았다. 건물 내외부에 연회석 재료 사용, 여러 가지 밝은 색 적용, 장식적 세부 등에서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그의 독특한 건축 어휘가 돋보인다. 미술관 내부는 1층에 강당, 회의실, 실기실, 서적판매부 등이 있고 2층(기획), 3·4층(상설)은 전시실로, 5층은 사무실과 도서실로 사용되고 있다.

벤투리 부부는 건축계의 고질적인 '성차별'의 상징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거의 평생을 같이 작업하고 책을 썼지만, 1991년 프리츠커상은 벤투리만 수상했다. 2013년 3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에 1991년의 수상자가 벤투리 한 사람이 아닌 스콧 브라운과의 공동 수상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청원됐다. "브라운은 건축사무소 벤투리 스콧 브라운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공동 파트너로서 22년 이상 활동했고, 건축 이론 및 디자인 분야에서 벤투리와 함께 30년 넘게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72년작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역시 벤투리와 그녀의 공저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역할을 '아내'로만 바라봄으로써,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오직 그녀의 남편만을 수상자로 선택했다." 프리츠커 위원회는 이전의 심사위원들이 결정한 결과를 이후의 심사위원이 재심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어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6년 미국건축가협회(AIA) 골드 메달을 받았다.

1996년 벤투리 부부는 샌디에이고 현대 미술관(MCASD·Museum of Contemporary Art San Diego) 개조 작업에 참여했다. MCASD는 이들 부부의 건축 철학이 가장 잘 녹아 있는 건축물 중 하나다. 건축은 사색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라고 했다. 풍부한 장식, 친근감, 복합성을 지니되 통일감이 있어야 훌륭한 건축물로 꼽았다.

개인 주택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은 재즈와 네온사인 등 팝아트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전통적인 미술관이라는 딱딱한 상징성보다는 도시와 주변이 갖고 있는 유연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야자수가 들어선 주변 경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미술관으로 꼽힌다. 샌프란시스코가 히피로 상징되는 자유의 도시라는 점을 감안한 셈이다.

2005년 '기호화 시스템으로 읽는 건축, 매너리즘 시대를 위하여'(Architecture as Signs and Systems:For a Mannerist Time)를 출간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건축과 언어:1960년대 이후 서구건축의 이론과 실험(김성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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