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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동학농민혁명, 평등과 민주주의의 유산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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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유작… 50여년간 힘쏟은 동학농민혁명 연구 집대성

한겨레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2·3

이이화 지음/교유서가·1권 1만5000원, 2·3권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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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5일 전봉준 생가 앞에서 사진을 찍은 고 이이화 선생. 교유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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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은 인간 평등을 추구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용틀임이었다. 민중은 국가 권력으로 자행되는 국가 폭력에 맞서 목숨을 바쳤다. 이들 주체는 농업사회의 생산대중인 농민을 비롯해 노비, 백정 등 천민집단이었다.”(<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권 ‘서문’ 가운데)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이이화(1937∼2020) 선생의 유작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전 3권)가 6일 출간된다. 책은 19세기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계기부터 21세기 동학농민혁명이 재평가 받기까지 120여년이 넘는 질곡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가 50여년 넘게 연구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총정리한 유일한 책이 된 셈이다. 평생 역사 대중화를 위해 힘썼던 그는 <허균의 생각>(1991·개정판 2015), <한국사 이야기>(전 22권·1998∼2004·개정판 2015), <역사 속의 한국 불교>(2002), <한국의 파벌>(2004), <전봉준 혁명의 기록>(2014), <이이화의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2016) 등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지은이는 이번 책 집필을 2018년 11월 시작해 다음해 7월 마무리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건강이 나빠져 원고 교정, 사진 작업 등 출간 후반 작업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신정민 교유서가 대표는 “선생님이 2018년 10월 ‘동학농민혁명사-녹두꽃 다시 피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기획안을 보내신 뒤 지난해 4월 마지막 현장 답사를 거쳐 원고를 완성하셨는데, 아마도 이 책이 마지막 단독저서가 될 것 같다고 하셨다”며 “후반 작업중에 세상을 떠나셔서 책을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자료 발굴 등 책의 마무리 작업에 참여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연구조사부장은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통사 저술은 선생님이 생애 꼭 완성하고 싶었던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혁명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역사의 재해석’ 과정까지 담은 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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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화백의 <동학무명농민군>(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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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1권에서는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의 전파, 농민과의 결합 과정을 담았고, 2권에는 일제에 맞선 동학농민군의 활약상 등을 그렸다. 마지막 3권에서는 전봉준을 비롯한 혁명 지도자들이 처형된 과정, ‘3·1혁명’에 참여한 손병희 등 동학농민운동가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198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된 역사적 재평가 작업 등을 두루 전한다.

이 책의 특징은 3권에서 두드러진다. 한용운, 여운형 등 동학농민혁명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직간접 영향을 받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규 부장은 “동학농민혁명이 3·1혁명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깊이 다루지 못했는데, 이번 책이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계승자들에 대한 연구로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용운이 출가한 까닭은 유림으로 수성군을 지휘하며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아버지 때문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거나 관아에 쫓겼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분명한 건, 만해가 15살에 겪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그는 동학군이 지향한 반봉건·반일 노선을 평생 지키면서 투쟁했다는 점이다. 여운형의 경우에는 그의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작은아버지가 모두 동학당이었다. 동학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양반이었음에도 그 덕에 신분제에 얽매이지 않는 평등 정신을 접할 수 있었다. “여운형이 신분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관계를 이루려 노력했고 재산을 나누어준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여러 정신 가운데 지은이가 가장 힘을 쏟은 부분은 평등 사상이다. 동학농민군의 통치기구인 집강소를 예로 들면, 이곳은 처음에는 동학이라는 종교 활동을 위한 점조직이었는데, 농민군은 이곳을 사회 변혁운동을 펼치는 장소로 활용했다. 집강소는 일종의 해방구로, 이곳의 농민군은 전근대의 공고한 사회질서인 신분제도를 타파했다. 종과 상전, 백정과 양반, 여자와 남자, 어린아이와 어른, 평민과 벼슬아치 모두 예외 없이 서로 ‘접장’이라고 부르며 높였고 만나면 맞절을 했다. 동등한 호칭을 사용하고 같은 자세로 절을 한 것은 그들이 추구한 신분 해방과 평등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지은이는 “집강소를 통한 신분타파운동, 상하존비 곧 계급 의식을 타파하고자 한 예절개선운동은 인권사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군의 행동준칙에는 인명 존중과 약자 보호가 포함돼 있었다. ‘적을 맞설 때 지킬 약속 네 가지’를 보면 △칼에 적의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첫째 공으로 삼는다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벌이더라도 일체 인명을 손상하지 않는 것을 귀중히 여긴다 △마을을 지나갈 때 일체 사람들의 재물을 훔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있다. ‘군사를 경계하는 호령 12조’에는 △곤경에 처한 이는 구제해준다 △탐욕스럽고 모진 벼슬아치는 쫓아낸다 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3권 마지막 부분에 ‘역사운동가’이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자신의 경험을 바탕 삼아 동학혁명 재평가 작업에 참여한 일을 기록했다. 2004년 국회의 특별법 제정으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고 2019년 5월11일이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는 과정 등을 남긴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한국 근대사를 밝히는 상징”으로 삼고 “저항적 민주주의 또는 생존적 민족주의”라는 씨앗을 뿌린 인권사적 사건으로 기념하는 데까지 나아가려 한 지은이의 노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동학농민혁명은 3·1혁명, 4·19혁명, 반독재·반군부 민주항쟁, 촛불혁명의 근원으로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분단 구조 등 민족 모순을 청산하는 동력이 되고, 진정한 평등과 자주를 실현하는 과제를 안고 인권을 보장하는 학습장 또는 토론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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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2월 일본영사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가마 위에 앉아 압송되는 전봉준. 교유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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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쓴 역사 이야기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현장 답사와 동학농민군 후손·현지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꼼꼼하게 고증한 점이다. 세부적인 묘사나 일화들이 흥미로운데, 일례로 동학농민군이 사용한 비장의 무기로 알려진 ‘장태’ 이야기를 보자. 장태는 닭장을 변형해 만든 일종의 방패로, 동학군은 그 안에 짚을 넣어 굴리며 총알을 막는 데 썼다. 장성의 접주(우두머리) 이춘영의 아들 이규익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이춘영은 친구 송영직의 집 후원에 있는 대나무로 장태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장태 하나의 높이가 5척, 길이는 12척이었고 이후 이춘영의 별명이 ‘이장태’가 되었다고도 한다.

전주비빔밥에 대한 유래도 전한다. 1894년 4월 호남 제1성인 전주성을 점령한 수만 명의 동학농민군이 성안에서 갖은 채소 반찬을 밥과 버무린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전주의 유명한 전주비빔밥이 제삿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 시기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은이는 적었다.

이번 책을 마무리하며 이이화 선생은 특별히 편집자에게 사진 자료를 충분히 실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책에 실린 200여 장의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진들을 편집하면서 편집진들은 유적지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신경을 썼다. 마지막 권 100쪽짜리 부록에 실린 사발통문과 전봉준과 손화중이 1894년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 마을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선전포고문의 격한 분노도 눈에 띈다.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거의 자기 몸을 살찌우고 집을 윤택하게 하는 계책에만 몰두하여 벼슬아치를 뽑는 문을 재물을 모으는 길로 만들고 과거 보는 장소를 교역의 장터로 만들고 있다. (…) 어찌 백성이 곤궁치 않으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무장포고문 가운데)

이번 책 역시 청소년부터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역사책이길 바랐던 그는 지난해 연말에 넘긴 서문에서 마지막까지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기억하지 않으면 그 사실이 던져주는 진실을 깨닫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을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기억해 미래 인권과 통일의 유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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