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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책임경영’ 약속 어긴 인터파크의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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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 대로변에서 출판인들이 피켓을 들고 외쳤다. “경영 책임 회피하는 인터파크 규탄한다”. 같은 달 8일 경영난을 이유로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모든 거래가 중단된 출판 도매업체 인터파크송인서적의 모기업인 인터파크를 성토하는 집회였다. 이 자리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등 18개 출판단체가 모였다. 출판인들은 ‘인터파크 규탄 출판인 총궐기대회’를 통해 무책임하게 자회사 영업을 포기한 행태를 비판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인터파크는 묵묵부답으로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1959년에 송인서림으로 시작한 송인서적은 단행본 출판사와 전국 서점을 잇는 서적 도매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 사태 속에서 부도가 났다. 부실 경영이 누적되며 2017년 1월에 또다시 부도를 냈다. 두 차례 모두 출판사들의 눈물을 머금은 채무 탕감이 영업 재개의 원천이었다. 2017년 당시 103억원의 어음 등 총 부도 금액 약 400억 원의 대부분을 탕감받으며 송인서적을 인수한 인터파크는 책임경영을 하겠다던 약속을 어겼다. 뿐만 아니라 거래 당사자인 출판계와 한마디 협의조차 없이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이 밝힌 바를 보면, 중소 영세 출판사 2300여 곳에 지급해야 할 채무 총액만 127억원이다.

인터파크는 송인서적을 인수하며 출판 도매시장 진출을 통해 출판계를 대표하는 ‘공적 기업’으로서의 역할과 전국 출판사와 서점을 잇는 오투오(O2O·Online to Offline) 전략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는 ‘투자사’로서 대주주의 주권 이상의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며 무책임한 언동을 한다. 여행 사업과 티켓 판매 등 주력 분야 매출이 급감하는 등 올해 1분기 인터파크그룹 자회사 18개사의 매출액(7776억원)과 당기순이익(약 189억원)은 작년보다 11% 정도씩 하락했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의 매출은 매년 증가 추세였지만, 적자가 나는 자회사들을 잘라내는 수순으로 보인다.

출판계는 영세 출판사들의 희생을 외면하는 인터파크의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다시 요구받을 채무 탕감을 감내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업청산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나아가 인터파크 인터넷서점에 대한 도서 공급 중단이나 인터파크 불매운동 등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강경한 분위기다.

기업의 생명은 사회적 가치와 평판으로 좌우된다. 3년 전 출판계가 송인서적의 새로운 경영 주체로 인터파크를 선택한 것은 중견기업의 안정성과 지명도, 그리고 인터넷서점 거래로 출판시장을 이해한다는 특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손쉽게 출판 도매업체를 자회사로 만들 때는 ‘공적 기업’ 운운하더니, 그룹이 어려워지면서 가장 먼저 토사구팽하려 한다. 이번 사태 추이를 출판계는 물론이고 저자, 서점, 도서관, 독자 등 많은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인터파크는 사태의 엄중함을 직시해야 한다. 기업 생명을 걸고 책임 있는 자세로 신속한 사태 해결에 나서길 바란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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