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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현실의 중력과 상상력의 부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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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혹은 애슐리

김성중 지음/창비·1만4000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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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 번째 소설집 <에디 혹은 애슐리>를 가리켜 김성중(사진)은 “현실의 중력과 상상력의 부력 사이에서 분열된 시기를 보내고 있다”(‘작가의 말’)고 평했다. 중년이 된 운동권 출신들의 이야기에서부터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에스에프, 가정폭력 희생자인 여성이 동화 속 소녀들을 구하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감과 형태를 지닌 수록작들을 읽어 보면 ‘과연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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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상속’은 죽음을 앞두고 책을 정리하는 초로의 여성 기주와 소설가 진영을 등장시킨다. 두 사람은 문학아카데미의 소설 창작반에서 ‘시절 인연’으로 만났던 사이. 그들의 스승이었던 젊은 여성 소설가는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첫 책을 낸 지 이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 선생님이 제 나이의 두 배 정도 되는 제자 기주에게 주었던 책을 이제 기주가 다시 진영에게 넘겨주려 한다. 선생에게서 제자1에게로, 다시 제자1에게서 제자2에게로 의발을 전수하듯 책을 ‘상속’하는 과정이 아프고도 따뜻하게 그려진다. 책을 정리하듯 삶을 정리하면서 기주가 소설 창작반 합평회와 뒤풀이를 “지금 내가 가져가고 싶은 단 한권의 책”으로 떠올릴 때, 삶과 책은 무람없이 한통속이 된다. 소설 결말부는 진영의 꿈으로 처리된다. 꿈 속에서 기차에 탔던 진영은 창밖으로 수많은 항아리의 파편들을 목격하고 차에서 내려 파편들에 다가간다. 다가가니 파편들의 정체가 자명해진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다. 이것은 톨스토이다. 이것은 발자크, 나보코프, 플로베르이며 카프카이자 마르케스다. 이것은 선생님의 유품이다.” 선생님의 유품뿐만 아니라, “성공을 거두지 못한 모든 소설의 잔해가 거기 있었다.”

“가장 최근에 독자가 된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을 항아리들”이란 작가에서 독자로, 독자1에서 독자2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학의 연속성과 영속성을 인상적인 이미지에 담아 보여준다.

‘상속’만이 아니라 ‘해마와 편도체’ ‘정상인’ ‘마젤’ 등의 작품에서도 책과 작품 속 이야기는 중요한 모티브로 쓰인다. “독서는 가진 것 없는 나의 유일한 허영”(‘해마와 편도체’)이라는 십대 소년에게나, “다 책대로 됐는데, 혁명만 오지 않았”다고 냉소하는 왕년의 운동권(‘정상인’)에게나 책과 독서는 그들 삶을 규정하다시피 한 결정적 요인으로 꼽을 만하다. 현실의 중력과 상상력의 부력 사이 매개자로서, 작가에게도 책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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