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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더오래]마시다 걸리면 곤장, 카페 문 닫고…커피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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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63)



직장에 다니면서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젊은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그것은 19세기 유럽의 살롱음악회와 같은 고전음악카페를 오픈하는 것이었다. 연주자와 객이 무대를 경계로 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음악회를 갖고 끝난 후에는 커피를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다. 무대에 서기 어려운 연주자에게는 기회를, 관객에게는 즐거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카페 운영을 은퇴 후 목표로 정하자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커피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7세기경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가 발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느 날 평소 얌전하던 양들이 빨간 열매를 따 먹고 나면 갑자기 흥분하는 것을 보고 직접 먹어본 결과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을로 돌아와 어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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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유럽에 전파된 뒤에도 논란이 있었다. 가톨릭신자들은 이교도의 음료인 커피 음용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을 했지만, 커피를 맛보고 반한 교황은 커피에 세례를 주고 음료로 허용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사진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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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들은 이슬람 성직자가 이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신도들에게 애용하도록 권하면서 사회에 널리 퍼졌다. 커피란 말은 에티오피아의 커피 재배지역 카파(kaffa)에서 유래한다. 그 후 커피는 16세기 아랍에서 이스탄불을 거쳐 유럽에 보급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배척했다. 특히 교황은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까지 규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상류층에서 커피가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여자들에겐 커피 마시는 게 금기였다. 그것은 커피가 여자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바흐의 커피칸타타를 들으면 그러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곡은 커피를 좋아하는 젊은 딸 리센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 쉬렌드리안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커피는 몸에 좋지 않으니 마시지 말라’고 수없이 당부하지만 딸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나아가 ‘아. 커피 맛은 정말 기가 막혀. 키스보다 달콤하고, 맛 좋은 와인보다 부드러워.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제발 커피 한잔을 따라줘요’라며 커피 예찬론을 편다.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를 계속 마시면 산책도 못 하게 하고 집에 가두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예쁜 옷을 사주겠다고 달랜다. 하지만 딸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커피만 마시지 않는다면 곧 결혼을 시켜 주겠다고 제안하자 딸은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며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버지가 신랑감을 물색하는 동안 딸은 아버지 몰래 방을 붙인다. 즉, 자기에게 청혼하는 자는 언제나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약속을 해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바흐는 이 코믹한 칸타타는 보수적인 성격의 구세대를 대표하는 아버지와 개방적인 성격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딸의 대화를 통하여 둘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커피칸타타의 초연은 콜레지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 교육 및 연주를 위한 음악인 집단)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졌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커피 애호가인 점을 고려하면 딸의 재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웃음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얘기지만 그 당시 사회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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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는데 처음에는 남성들만 즐겼다. 가정주부들은 커피가 남성의 정력을 상실케 하여 부부 생활을 방해하고 가정을 파괴한다고 청원을 넣었지만, 커피애호가였던 왕은 주부들의 주장을 기각하였고 카페는 살아남게 된다. [사진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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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경 콘스탄틴노플에 카페가 처음 생겼는데 그 후 규모가 커지면서 실내 장식이 화려해졌다. 손님을 즐겁게 하고자 각종 게임 및 음악, 댄스홀까지도 마련되었다. 금욕을 으뜸으로 삼았던 이슬람 세계에서 신도들이 커피를 마시고 춤과 음악에 빠져 쾌락을 일삼게 되자 카페를 일제히 폐쇄한다. 급기야 커피를 마시다가 들키면 태형과 같은 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억압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커피는 더욱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커피가 유럽에 전파된 뒤에도 커피 금지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커피가 너무 빠르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움직임은 가톨릭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일부 가톨릭 지도자는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슬람교에 불만을 품고 이슬람교도가 마시는 커피를 마셔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커피를 마셔도 되는가를 두고 여러 논쟁이 이어졌으나 16세기 교황 클레멘트 8세에 이르러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가톨릭 신자가 이교도의 음료인 커피 음용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을 하자 어느 날 교황이 직접 마셔보았는데 그 맛에 반했다. 그래서 ‘악마가 마시는 거라지만 참으로 맛있도다! 이 맛있는 것을 이교도만 독점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라며 커피에 세례까지 주고 음료로 허용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커피는 유럽 전역에 퍼졌는데 처음에는 남성만 즐겼다. 카페에 남성이 모여들며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가정주부들이 왕에게 카페를 폐쇄해 달라는 청원을 넣게 된다. 커피가 남성의 정력을 상실케 하여 부부 생활을 방해하고 가정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남성들은 반발하여 이는 오해이며 커피는 오히려 부부 생활에 도움을 준다는 반박문을 올리고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커피 애호가였던 왕은 주부들의 주장을 기각하였고 카페는 살아남게 된다. 커피가 이처럼 많은 수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후 전 세계에 걸쳐 커피가 보급되며 이제는 여성도 즐길 수 있는 대중 음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지만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규범도 후세 사람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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