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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명품 떨이 판매' 흥행에도 면세점 "남는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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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을 시중 판매가 대비 최대 70% 할인
"악성 재고 털기일 뿐 이익 남기기 아냐"
쌓인 재고만 3조…처분 가능 물량도 제한
한국일보

코로나19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공항에 입점해 있는 면세점들이 심각한 매출 타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한 승객이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텅 빈 탑승수속 구역을 지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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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들이 온ㆍ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약 400억원어치의 물량을 대폭 할인해 푸는 행사가 연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 속에서도 당일 준비된 물량의 90%가 팔려나가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면세점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입을 모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행객들이 사라지면서 창고에 쌓인 재고 규모가 워낙 방대한 데다, 앞으로 추가로 풀 수 있는 물량 역시 제한돼 급감한 매출을 회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3일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일 신세계면세점을 시작으로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등이 전날인 2일까지 회사별로 두 차례에 걸친 재고 면세품 판매를 마무리했다. 현재까지 3개 업체가 시중에 푼 물량은 400억원 가량으로 각 사 판매 채널의 재고 소진율은 50%에서 최대 9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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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세점이 2일 면세품 2차 판매에서 내놓은 주요 상품들. 신라면세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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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세점이 이날 추가 판매에 들어간 발렌티노 전 상품은 오후 2시 시작하자마자 모두 품절됐다. 지방시, 프라다 등 40여개 브랜드, 500여개 품목을 대량 판매한 1차(6월 25일) 판매 당일 준비된 재고 중 50%가 판매 개시 3시간 만에 팔려나갔고, 이달 2일 2차 판매 브랜드 중 발렌시아가는 시작 30여분 만에 '완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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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터넷면세점 홈페이지에 6월 25일 1차 재고 면세품 할인 행사 안내문이 걸려 있다. 신라인터넷면세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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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면세점의 1일 2차 판매는 1차 품목 대비 소폭 낮은 가격대의 제품들로 판매 가짓수를 늘려 소진율은 60% 선이었지만 매출액이 1차 때보다 1.5배 늘었다. 1차 판매 재고 소진율 70%대 중반에서 마감됐다. 신세계면세점은 e커머스 업체 SSG닷컴과 신세계인터내셔날 온라인몰 등을 통해 판매한 결과 소진율이 최대 90%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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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비자가 롯데쇼핑 온라인몰 '롯데온'을 살펴보고 있다. 롯데온은 6월 23일과 7월 1일 각각 롯데면세점 재고 판매를 진행해 60~70%의 재고 소진율을 기록했다. 롯데쇼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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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업체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이번 판매는 관세청이 매출이 급감한 면세점 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면세품 내수 판매를 허용하면서 진행된 것인데, 주요 품목인 명품 패션잡화의 원가에 관세 등이 붙은 상태에서 시중 판매가 대비 최대 70%까지 할인해 파는 '재고 떨이'라 말 그대로 '남는 게 없는 장사'이기 때문. 수익 회복이 목적이 아니라 약간의 유동성 확보에 만족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면세점 업체 관계자는 "백화점은 장소만 빌려주지만 면세점은 제품을 사 와서 재고로 보유하면서 판매하는 형태"라며 "코로나19로 판로가 막혀 재고는 쌓이고 공항 임대료는 계속 나가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악성 재고 위험을 덜어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처리 가능한 재고 물량 자체도 한계가 있다. 관세청이 오는 10월 29일까지 한시 허용한 판매 대상은 '6개월 이상 장기재고품'으로, 업계가 예상하는 3대 면세점의 판매 가능 물량은 800억원가량이다. 약 3조원으로 추정되는 전체 재고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완판'에 성공하더라도 3대 면세점이 현재 인천공항에 납부해야 하는 한달 임대료가 419억원임을 감안하면 겨우 월세 두 달치를 버는 셈이다.

자유롭게 판매 품목을 정할 수 없는 점도 걸림돌이다. 통관이 까다로운 화장품과 관세가 높은 술ㆍ담배가 품목에서 제외되면서 명품 패션잡화가 주력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만 브랜드에 따라 할인 판매를 거부하는 곳도 있어서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품목들이라 재고 처리가 시급한 면세점들은 답답한 상황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샤넬, 루이비통 등 소위 말하는 '톱 브랜드'는 다 빠졌다"며 "본사가 할인 판매를 허용해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제 브랜드 가치를 중요시하는 일부 브랜드들은 코로나19 속에서도 제품 가격을 되레 올리는 추세다. 샤넬은 5월 중순 주요 제품 가격을 20% 가까이 인상했고, 디올이 최근 10~12% 인상한 데 이어 에르메스도 이달 중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그나마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면세점들은 올 가을까지 재고 판매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여객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한 경영 정상화의 뾰족한 대안은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415만명에 달했던 국내 면세점 이용객 수가 올 5월 46만명으로 급감하면서 같은 기간 총 매출액은 2조860억원에서 1조179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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