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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움츠러들거나 숨지 않는 여자의 몸이 호쾌하게 힘을 뿜어낸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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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건축학개론>의 포스터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활발한 여자아이였던 사람들에게, 더 심금을 울리는 말을 건넨다. “우리 모두는 어느 초등(국민)학교의 ‘조폭 마누라’였다.” 야 너도? 야 나도!

2019년 ‘캡틴 마블’의 등장으로 힘 센 여자의 아이콘이 바뀌었다. 캡틴 마블은 ‘우악스러운, 여성스럽지 않은’ 여자아이를 놀리던 조폭 마누라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다. 이름부터 캡틴! 경외감도 한 스푼 듬뿍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2020년, 우리는 민경 장군을 만났다. 다칠까봐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근수저’, 운동 못하는 법을 모르는 운동천재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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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서브 콘텐츠 웹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의 프로젝트 첫 주자 김민경. 그는 뛰어난 힘과 신체 조건·운동 이해력을 모두 가진 ‘근수저’로 불린다. 출처| ‘오늘부터 운동뚱’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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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 뚱>은 Comedy TV <맛있는 녀석들>의 서브 콘텐츠로, ‘맛녀석’ 4인방이 운동에 도전하는 웹예능이다. 김민경이 첫 번째 주자로 당첨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불안했다. ‘맛녀석’의 유일한 여자 멤버인 김민경에게 다이어트를 시키면 어떡하지? 반대로, 운동해도 살이 안 빠진다고 조롱하면? 여자의 외모를 나노 단위로 평가하고, 날씬한 몸과 체중 조절을 곧 ‘자기 관리’로 치환시켜버리는 난폭한 세계가 몸집이 큰 여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정상 체중’ 바깥의 신체는 자주 게으름, 관리의 소홀함, 무능력함, 심지어 건강하지 않으니 자기 학대라는 식의 비난을 받는다. 그것은 당사자를 배제하는 동시에, 정상 체중 범위의 몸에도 ‘저렇게 안 되려면’ 노력하라는 본보기로 작동한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이것은 신이 큰 그림을 그리며 김민경을 뽑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부터 <운동 뚱>은 “민경이 날씬해졌다. 이게 아니라, 먹고 싶은 거 다 먹는, 맛있게 많이 먹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며, 운동의 효과보다 운동을 하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반전은,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렇듯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해치워 버리는 김민경의 타고난 운동신경이다. ‘마른 것’이 곧 건강한 몸이니 살찐 것은 ‘Love yourself’도 아니라고까지 기만하는 다이어트 산업의 입김이 뜨거운 가운데, 김민경은 번쩍 들어 올린다. 레그 프레스 340㎏과, 그만큼 무거운 ‘체중과 운동능력의 과장된 상관관계’를. 헤라클레스가 따로 없고 그 카타르시스는 미셰린 5스타보다 맛있다. 미셰린 5스타 먹어봤냐고요? 알게 뭐람, <운동 뚱> PD는 민경 장군에게 미셰린 어쩌고를 삼시 세끼 대접하라!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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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김민경씨가 UFC 한국인 최다승 선수였던 김동현씨에게 종합격투기를 배우며 주먹을 날리고 있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의 <오늘부터 운동뚱>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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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설아는 <다이어트의 성정치>에서 다이어트가 근대의 중요한 프로젝트가 된 배경을 살핀다. 건강이 의료화되는 과정에서 의학은 예방의학의 차원으로까지 그 권위를 확대했다. 예방의학 담론은 특히 과식, 과음, 흡연, 운동 부족 등 몸의 남용이라고 생각하는 행태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질병들에 끊임없이 주의를 길들이도록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것이다. ‘정상 체중’이라는 개념이 개별적 특성의 고유함과 무관하게 ‘정상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고, 과체중과 비만의 위험성이 적극적으로 퍼진다. 사실은 저체중 역시 과체중 못지않게 위험하고, 지방이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 같은 것은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큰 몸은 둔하고 무능하며 날씬한 몸만이 잘 관리된 것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은 기껏 운동을 하러 간 공간에서조차 강력하다. 운동은 다이어트 산업과 건강 담론과 만나 몸을 서열화하고 운동에 계급을 나눈다. 나는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라는 운동 에세이를 냈지만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하는 이들을 마주친다.

록산 게이는 <헝거>에서 고도비만 여성이 운동 열풍에서 어떤 소외감을 느끼는지 고백한다. 헬스클럽에서 딱 붙는 운동복을 입은 날씬한 여성이 록산 게이의 옆에서 사이클을 탄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여성은 사이클 경쟁에서 패배한 후 물러나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저 여자가 아직도 저기에 있다는 게 믿어지냐’고. 비슷한 맥락으로, <운동 뚱> 13화에서 필라테스를 하러 간 김민경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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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의 <오늘부터 운동뚱>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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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한 사람만 필라테스 하라는 법 있어?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필라테스는 젊고 날씬한 여성들만이 딱 붙는 옷을 입고 몸의 라인을 다듬는 운동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것은 여성의 운동 장면을 성적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관음증적 시선과, 날씬한 몸만을 바람직한 몸으로 승인하는 운동 산업의 합작이다. 사실은 정말 극악무도한 운동인데 말이다. 그리고 김민경은 필라테스마저 ‘잘해버린다’. 그 동작, 제가 제대로 하기까지 반 년이 걸렸는데 그렇게 첫날에 해버리시면…?

<운동 뚱>의 또 다른 재미는 다양한 운동 분야의 강사와 민경 장군의 ‘케미’다. 현실에서 우리는 뚱뚱한 몸을 죄악시하거나 ‘탈출’해야 하는 것으로 주입하거나 살을 ‘전쟁’을 치러야 하는 적이라고 외치는 운동강사를 만나기 쉽다. 그러나 김민경이 만나는 운동강사들은 김민경의 운동 능력에 집중하고, 칭찬한다. 김민경은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다며 좋아한다. 대부분의 시청자 역시 운동에 관해서 그다지 즐거운 기억이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청소년에게서 운동의 즐거움을 빼앗는다. 특히 여성은 아동일 때부터 운동장에서 소외되고, 근육이 발달하거나 관음의 대상이 될까봐 운동을 기피하게 된다.

마른 몸이 곧 ‘착한’ 세상에서 여성의 운동은 늘 다이어트와 직결되고, 그래서 고통스러우며, 안 하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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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의 <오늘부터 운동뚱>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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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기억과 연상은 꾸준한 반복에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운동을 ‘마지못해’ 했는데, 트레이너의 “운동에 감 있어요. 못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 재미를 붙였다. 물론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구르다가 다른 회원에게도 똑같이 하는 걸 봤지만…, 나에게 와서 뺨을 비비던 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츄르를 얻어먹는 걸 본 기분이 되었지만…. 폭포 같은 칭찬과 긍정 속에서, 김민경은 여전히 올 때는 곡을 하지만 할 때는 집중하면서 재능을 뽐내고 있다.

<운동 뚱>에서 우리는 몸집이 큰 여성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한다. 경악과 경멸이 아니라, 경탄과 존경으로 빛나는 그것은 여성의 몸을 평생 좁고 마른 틀 안에 옥죄려 한 악력의 반작용만큼이나 짜릿하다. 여자의 몸, 힘, 건강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를 느끼고, 다른 가능성을 탐색한다. 누구도 김민경 앞에서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라’는 입에 발린 말을 할 수 없다. 움츠러들거나 숨지 않는 여자의 몸이 호쾌하게 힘을 뿜어내는 장면은 너무나 귀하다. <맛있는 녀석들>은 보는 것만으로 침이 고이는데 왜 <운동 뚱>은 보는 것만으로 근육이 생기지 않을까 조금 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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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의 <오늘부터 운동뚱>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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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는 김민경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불안했다고 썼다. 이제 나는 새로운 에피소드가 업로드될 때마다 설렌다. 이번에는 김민경이 어떤 존경을 받을까? 또 어떤 운동을 ‘잘해버리고’ 말까? 두근거리면서 하찮은 내 몫의 운동을 간다. 김민경을 보고 운동 자극을 받는 것은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내 몸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견적부터 뽑아보자.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갑작스러운 고강도 운동(스피닝)으로 인한 부작용(횡문근융해증)을 겪은 사람들의 후기를 봤다. 나는 몇 년 전 크로스핏이 유행할 때 물리치료실에 줄줄이 누운, 크로스핏 하다가 실려온 환자들을 보면서 일찌감치 깨달은 바가 있다. 힘들면 포기하자!

막상 운동을 시작하면, 김민경처럼 근수저거나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아서 좌절할지도 모른다. 운동이 인생을 바꾸거나 갑자기 운동의 재미에 눈을 뜨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한 입만’을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김민경이 더 잘 먹고 행복한 일상을 위해 운동하듯, 가늘고 길게, 적절한 나의 동반을 만드는 마음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나약한 나를 극복하여 ‘더 강한 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길 약하거나 아픈 몸이라도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야금야금. 나는 운동 천재도, 근수저도 아니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잘하는 건 남을 구경하면 된다. 원래 세상에 천재의 비율은 한 ‘꼬집’이고 그래서 보는 게 재밌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번 주에도 잘 부탁해요, 김민경 파이팅~(누워서)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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