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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박일호의미술여행] 과학기술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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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프란츠 마르크의 ‘작은 노란 말들’


노란색으로 칠한 이상한 말 세 마리가 있다. 머리는 셋인데 몸과 엉덩이가 잘 구분되지 않고, 곡선 형태로 서로 뒤섞여 일체감을 이루고 있다. 배경의 구름이나 산과 마을도 신비로운 느낌의 색채로 표현되어 현실세계를 초월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청기사파 표현주의자인 프란츠 마르크의 작품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표현주의는 19세기 말 사람들 사이에 퍼진 사회적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그 위기가 인간 스스로에 의해서 초래된 것임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겪는 고통이나 비극적 느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려 했다. 표현주의는 두 단계로 진행됐는데, 다리파 표현주의는 독일 시골 작은 도시인 드레스덴의 투박한 성격과 유사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색채와 형태들을 거칠게 표현했다. 이에 비해 청기사파는 그 중심지인 뮌헨의 국제도시 분위기 영향으로 보다 세련된 형식의 추상적 표현주의 경향으로 향해 나갔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 눈에 보이는 세계 이면의 힘을 신비적으로 나타내려 했다. 마르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마르크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과 자연세계 너머 불가사의하고 원초적인 힘을 표현하려 했다. 인위적이며 합리적으로 구분되고 이성을 통해 정리된 형태를 피하려 했고, 그렇게 구분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형태로 나타내려 했다. 그래서 세 마리 말들이 서로 뒤섞여 일체감을 이루게 했고, 색채에서도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신비스런 느낌을 강조했다. 자연의 불가사의함을 암시하기 위해서 구성과 색의 선택에서 상상력을 발휘했다.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지금도 많지만 양면성이 있는 듯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가 하면 다시 번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과학의 한계를 생각하게 한다. 반면 온라인으로 한 학기 수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 덕택이다. 일회로 그치는 현장수업보다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표정을 보면서 갖는 인간적 교감이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과학기술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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